본문 바로가기

북스

성공회 : 넉넉하게 하나 되는 그리스도교 신앙








성공회 : 넉넉하게 하나 되는 그리스도교 신앙



글. 주낙현  _20150819





세상은 종종 낯선 것을 두려워하거나 멀리합니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일에 호기심이 발동할 법도 하지만, 모험이 부담스러워서 인지 탐험에는 나서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 사는 자리와 환경, 가치 체계와 신념을 더 편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러다 보면 새로운 탐험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기 어렵습니다. 더 넓고 깊은 자연과 문화, 세계와 사람을 만나지 못합니다. 종교와 신앙의 여정에 관한 태도에서도 비슷한 일이 많습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고향을 떠나 낯선 땅을 여행하는 일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태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서 새로운 신앙의 순례를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했고, 이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순례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느님께서는 몸소 인간이 되시어 새로운 삶의 경험과 지평을 열어주셨으며, 새로운 길을 탐험해 보라고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이 초대에 두려움 없이 응답하는 것은 ‘세상 사람’과 신앙인을 분별하는 하나의 기준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전통의 깊고 넓은 강물에 비하면, 한국 교회의 신앙 이해와 경험은 얕은 개울물처럼 보입니다. 개울물에 안주할지, 더 깊고 넓은 강물과 바다를 탐험할지는 결국 개인의 결단에 달린 것이니 무턱대고 모험과 탐험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세계의 지도를 펼쳐보고 그 세계를 꼼꼼히 살핀다면,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고 새로운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넓고 깊은 안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새로운 지도를 펼칠 준비가 되셨나요?





여전히 낯선 교회?


한국에는 C.S. 루이스, 존 스토트, 알리스터 맥그래스, N. T. 라이트와 같은 저술가와 신학자 등이 잘 알려졌습니다. 최근에는 캔터베리 대주교를 지낸 로완 윌리엄스가 소개되어 한국 교회 신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성공회 전통이 일구어낸 걸출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성공회는 세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교세로서도 천주교와 러시아 정교회 다음으로 큽니다. 그럼에도 ‘성공회’라는 그리스도교 신앙 전통은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낯선 미지의 영역인 듯 보입니다. 성공회가 한국에서 유독 교세가 작기 때문일까요. 미미한 것에는 선뜻 관심을 두지 않고 간과하는 건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니면, 특정 개신교 교리와 전통이 워낙 강하게 한국 교회를 지배해서 그 잣대 밖에 있는 경험을 배척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도 아니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양자택일의 문화에 젖어 사는 탓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이는 더 깊은 이해를 스스로 방해하는 일입니다.


정보와 관점을 제한한 상태에서의 지식이란 진실의 다채로움을 깨닫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많은 사람이 성공회를 입에 올리면서, 16세기 종교개혁의 깊이와 복잡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단편적으로 헨리 8세의 혼인 문제, 혹은 국교회와 왕의 수장령을 떠올리며 엇나간 이해로 미끄러집니다. 종교개혁 전후 생겨난 교단들의 발생 배경을 살피면, 어디든 정치와 종교, 사회와 신앙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 관계를 살펴야 우리의 지식과 앎은 훨씬 깊은 곳에 가 닿습니다. 성공회뿐 아니라 다른 신앙 전통을 이해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전혀 모른다고 생각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편이 더 깊은 이해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성공회의 시작 – 모든 교단은 창조적 분열의 결과


그리스도교 역사에는 생성과 발전, 창조적인 분열이 다양하게 겹쳐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이채로운 색깔과 전통을 지닙니다. 그리스도교 세계의 가장 큰 분열은 1054년에 일어난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분열이었습니다. 서방교회도 중세를 거치면서 16세기에 이르러 큰 분열을 겪습니다. 종교개혁 사건입니다. 천주교에서 개신교가 갈라져 나온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하나였던 서방교회가 천주교,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등으로 분열된 것입니다. 성공회는 이 분열의 이유와 역사를 잘 알고, 그 분열의 창조적인 의미와 더불어 분명한 한계를 늘 되새기는 교회입니다.


성공회는 서방교회의 창조적 분열인 종교개혁을 통해서 잉글랜드에서 개혁된 교회입니다. 서방교회를 지배하던 로마 교회에서 정치적으로 독립하면서 동시에 신학의 개혁도 일어났습니다. 초기에는 교회의 독립에 치중하다가 점차로 급격한 신학 개혁의 소용돌이를 겪었습니다. 그렇다고 성공회가 옛것을 폐기하는 데 치중한 것은 아닙니다. 옛것의 보수와 새것의 개혁을 교환하는 가운데 성공회는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시대의 요구와 변화에 부응하여 느리지만 꾸준히 개혁하는 새로운 전통을 서방교회에 새겨놓았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유럽의 종교개혁, 그리고 이후의 여러 개신교단의 발전과 다른 모습일 지도 모릅니다.





잉글랜드에서 세계로 – 세계 성공회 


잉글랜드에서 시작된 성공회는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선교 활동을 통해서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성공회(聖公會)라는 교단 명칭은 전통적인 신경인 니케아 신경과 사도신경에 나오는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 Holy Catholic Church 에서 따온 것으로 한자 문화권인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쓰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에피스코팔 처치’ Episcopal Church 혹은 ‘앵글리칸 처치’ Anglican Church 라고도 불립니다. 지역마다 사용하는 명칭은 다르지만 성공회는 세계적으로 단일한 교단입니다. 이 세계 성공회를 ‘앵글리칸 커뮤니언’ the Anglican Communion 이라고 부릅니다. ‘친교’ communion 라는 말로 교단 이름을 정한 교회는 성공회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단일 교단으로서 세계 성공회는 서방교회에서 천주교 다음으로 교세가 큽니다. 


성공회는 길고 복잡한 역사를 통과하며 수많은 사람의 호흡과 생활로 이어져 왔기 때문에, 다양한 신앙 전통과 신앙의 개성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공회는 나라와 문화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니며, 한 교회 안에서도 신앙과 신학의 흐름이 매우 다양합니다. 다른 교단과 연관하여 성공회를 간단히 표현하라면, ‘개혁된 가톨릭’, ‘교황 없는 천주교’, ‘교리에 너그러운 정교회’, ‘가톨릭 전통을 유지하는 개신교’라고 해도 좋습니다. 



성공회, 전통에 근거하여 성찰하는 교회


하나의 교단으로서 성공회의 역사는 종교개혁에서 시작되지만, 성공회 신학은 초대교회부터 그리스도교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성공회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서 경험한 진리와 하느님의 선교에 기초를 두고 초대교회가 일어선 역사를 늘 명심하는 교회입니다. 초대교회와 중세교회, 근세와 현대에 이르는 역사에 담긴 신앙의 역사성, 즉 신앙의 전통을 깊이 성찰합니다. 아울러 잉글랜드와 주위 섬나라에서 일찍이 뿌리내렸던 토착 그리스도교 신앙에도 영성의 젖줄을 댑니다. 그래서 몇몇 탁월한 신학자와 그들의 신학에 기대기보다는 초대교회의 교부들과 교회의 신앙에 더 귀를 기울이고 배웁니다. 신학의 방법과 언어도 교회 공동체의 신앙에 기초하여 펼칩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성공회는, 미국에서 전래한 청교도적인 복음주의의 영향이 큰 한국 교회에서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지도 모릅니다. 



성공회, 예배로 일치하는 교회


초대교회가 신학하고 신앙하는 방법은 예배였습니다. 그렇기에 성공회는 예배를 신학과 신앙 공동체 생활의 핵심으로 여깁니다. 기도와 예배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신학은 없습니다. 신학은 기도와 예배, 그리고 교회 공동체를 위한 도구입니다. 성공회 안에도 교리와 신학의 논쟁이 있고, 그 갈래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한데 모여서 드리는 예배 앞에서만큼은 모든 논쟁을 잠시 멈춰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성공회는 예배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와 경험이 한데 어우러져 변화하고 일치하는 경험을 추구합니다.


성공회 예배는 교회 공동체가 정한 예배의 구조와 예배문, 그리고 의식을 갖추어 모든 교회가 함께 지키며 드립니다. 이런 예배를 전례(liturgy)라고 합니다. 성공회 예배와 전례의 핵심은 ‘성찬례’(Eucharist)입니다. 성찬례는 ‘말씀과 성찬’으로 크게 구성됩니다. 하느님께 귀 기울이고 이웃에게 경청하는 ‘말씀의 전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부활의 거룩한 식사를 되새기는 ‘성찬의 전례’를 나누면서, 신앙인은 하느님의 진리와 예수님의 삶과 성령의 힘으로 변화되고 일치하는 삶을 경험합니다. 성찬례 체험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나가 변화와 화해와 일치를 향한 하느님 나라를 일구라는 선교 사명을 실천합니다.





성공회, 시적인 언어로 신학하는 교회


성공회의 신학과 신앙의 언어는 교리적이거나 논리적이기보다는, 시적이고 은유적입니다. 하느님의 큰 진리를 인간의 머리에 모두 담거나 손에 쥘 수 없다는 겸손한 태도 때문입니다. 미국의 교부학자 로완 그리어는 성공회 신학을 교부 성 그레고리의 신학에 빗대어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교부들과 마찬가지로 그레고리 성인은 어떤 교리의 체계를 만들어내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에게 진리란 헤아리기 힘든 것이었으며, 이 세상은 그것을 충분히 담아낼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성인은 진리로 향해가는 길들을 마련하고, 하나의 진리에서 드러나는 여러 현상을 서술하고자 했다. 그 총체적인 진리는 우리 손에 잡힐 수 없는 그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진리에서 드러나는 여러 현상을 서술”하는 방법은 여럿이지만, 시의 언어는 가장 좋은 선택인지도 모릅니다. 성공회가 배출한 여러 시인은 하느님과 세상을 새롭고 탁월한 언어로 펼쳤습니다. 현대 영미 시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T. S. 엘리엇, W. H. 오든, 그리고 R. S. 토마스는 삶의 복잡성과 모순, 갈등과 고뇌가 초월을 향해서 어떻게 나가야 할지 아름답게 노래했습니다.  



교회 일치와 하느님 나라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성공회 성직자이자 위대한 시인인 존 던(John Donne, 1571~1631)은 일찍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고 물었습니다. 인간은 따로 떨어진 개인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은 다른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을 새로운 생각과 삶으로 초대한다고 일깨웠습니다. 성공회는 하느님의 창조세계가 서로 긴밀하고 기대고 서로 깊이 관계하고 있다는 진리에 몰두합니다.


창조세계의 관계성에 유독 예민하기에, 성공회는 다양하게 나뉘어서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하고 갈라져서 서로 싸우는 교회의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합니다. 그래서 20세기 초부터 교회 일치(에큐메니칼) 운동을 이끌며, 분열된 교회의 화해와 공동의 선교를 향한 협력에 매진했습니다. 지금도 성공회는 정교회, 천주교, 개신교 여러 교단과 함께 대화하며, 중재자와 화해자의 역할에 힘을 씁니다.


창조세계의 아픔은 하느님의 아픔이기도 합니다. 불의한 사회 정치 구조, 폭력과 전쟁, 창조세계의 파괴는 하느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관계를 깨뜨리는 죄입니다. 성공회는 억압과 파괴의 세력에 맞서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일구고 실천하는 일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세우시는 하느님의 선교에 모든 방법으로 참여하는 일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인 것을 성공회는 깊이 성찰하며 실천합니다. 



성공회 – 낯선 길을 마다하지 않는 넉넉한 품을 지닌 정직한 신앙


성공회는 갈등과 타협, 분열과 일치라는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스스로 교정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종종 고집스럽고 왜소한 주장과 행동이 그리스도교를 힘들게 합니다. 성공회는 하느님과 역사 앞에서 정직하려 하기에, 자신을 여전히 길을 걷는 불완전한 교회로 생각합니다. 그 불완전함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성공회의 겸손한 자랑이기도 합니다. 이 태도에서 성공회는 세상의 불완전한 사람들을 껴안고 그들의 신앙과 경험을 그리스도교의 전통과 교회 공동체 안으로 초대하여 대화하기를 즐깁니다. 그 대화는 문서와 선언으로 일치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함께 예배하며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더불어 걷는 일입니다. 이것이 참된 교회를 드러내는 표지이며 참된 권위가 실행되는 조건입니다.


한국 성공회는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오랜 전례 전통과 영성 전통을 ‘지금 여기서’ 되새기고 실천하는 큰 걸음의 교회입니다. 한국 사회와 교회를 좀 먹는 이원론의 신앙과 이분법의 행태를 극복하고, 창조 세계 전체를 껴안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입니다. 성공회는 이 선교 사명을 교회의 존재 이유로 삼아 살아갑니다. 이 걸음과 참여에 모든 사람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인정하고 초대합니다. 이 일은 여전히 낯선 일인지도 모릅니다. 성공회는 낯선 존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낯선 곳을 향해 낯선 이들과 함께 걷는 길이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


* 참고도서 

- 마크 채프먼, <성공회 - 역사와 미래>, (주낙현 역, 비아, 2014) 

- 로완 윌리엄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 세례, 성경, 성찬례, 기도>, (김기철 역, 복있는사람, 2015) 

- 로완 윌리엄스, <신뢰하는 삶>, (김병준.민경찬 역, 비아, 2015) 







주낙현 / 성공회 사제이며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에서 사목한다. 

전례학과 성공회 신학을 연구하며 관련 주제로 번역하며 글을 쓴다. 

개인 블로그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viamedia.or.kr 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