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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히의 『조직신학』을 뒤적이며 1. 틸리히의 신학 – 세상을 향해, 그럼에도 더 기독교적인 한국교회의 위기는 이미 식상한 소식이다. 어떤 이들은 위기의 알람음을 듣고도, ‘지금까지 나는 문제없었으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하면 된다.’ ‘나는 지금까지 문제없었는데, 왜 너는 무능하게 위기에 빠졌느냐?’ 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낙심하고 교회를 떠났던 성도들을 흡수하고 있는 일부 교회들을 제외하면, 한국의 개신교인 수는 감소하고 있고,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사회적 ‘매력’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기독교인들에게서 두 가지 신학적 흐름이 감지된다. 첫째는 올바른 기독교를 회복하고자 하는 흐름이다. 한국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 대부분의 교회는 성령운동, 은사운동, 교회성장에만 집중해왔다. 그 결과.. 더보기
오늘 우리를 위한 디트리히 본회퍼의 한 마디 1. 본회퍼, 여전히 읽을 이유가 있을까? 최근 우리나라 신학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의 권위자 가운데 한 분이 미국의 막스 스택하우스(Max L. Stackhouse)입니다. 필자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스택하우스 교수와 디트리히 본회퍼에 관련하여 심각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스택하우스 교수는 필자가 코스 워크를 진행하는 과정을 지도해주는 위원회의 일원이었습니다. 코스 워크 3학기를 마무리하면서 필자는 스택하우스 교수에게 정례적인 학업보고를 이메일로 보내면서, 향후 디트리히 본회퍼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논문을 쓸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적었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 아침에 필자는 스택하우스 교수로부터 매우 당혹스러운 답신을 받았습니다. 스택하우스.. 더보기
폴 틸리히: “믿음이 말 되게 하려고 한 사람” 1. 말에 서툰 말씀의 종교? 교회에 이미 익숙한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교 이야기들을 적당히 해도 별로 문제가 안 된다. 심지어 어설퍼도 괜찮다. 듣는 사람들이 잘 알아듣기 때문이다. 이유인즉, 그들도 이미 그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즉 듣고 싶은 대로 듣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소한 사람은? 이 물음을 그동안 잘 안 물었다. 복음이라는데, 기쁜 소식이라는데, 들을 사람이 알아서 새겨야 한다는 것인지 하여튼 선포의 이름으로, 대언한다면서 일방적으로 내뿜었다. 그런데 듣고 있던 사람들이 갸우뚱하더니 손사래를 치고는 박차고 나가 버렸다. 이런 사람들이 점차로 늘어났다. 탈종교화나 세속화라는 말들로 포장했지만 이런 근세의 분위기에 교회는 속수무책이었다. 급기야 더욱 거칠어진 현대의 반종교적 비판에도 그리스도교는 별.. 더보기
광장,청춘 ‘북스’ 2호를 발행하며 “젊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다른 각도에서 같은 작업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위험을 각오하고 뭉쳐 무엇이든지 감행하는 데 일치 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 그러면 승리는 따논 것이나 다름없다.” 위험을 각오하고 뭉쳐 일치 단결하자. 승리는 따논 것이나 다름없다. 20대 초반 셸링이 친구 헤겔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이미 칸트와 피히테 철학의 핵심을 간파했다고 자부했으며, 패기넘치는 투쟁 끝에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얼마 전, 일본에서는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30대가 새로운 학문 세대로 떠올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청년 세대가 중요한 번역서와 저작을 내놓기 시작했고, 대학의 새대교체도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꽤나 부러운 일입니다. 얼마.. 더보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망각 용서와 기억 유학을 떠나기 전, 데스몬드 투투 주교의 『용서 없이 미래 없다』(No Future without Forgiveness)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이끌면서 투투 주교가 겪었던 아픔과 기쁨을 감동적으로 적은 책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자신들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죽음으로 몰고 간 백인들을 끌어안으며 용서와 회복의 가치를 담담하게 서술한, 쉬우면서도 어려운 책이다.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들고, 가슴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와 울분을 잠재우기 힘들기 때문이다. 용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인간이 인간을 용서하는 게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인간을 용서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죽이기까지 했던 것을 생각하면, 진정 용서는 신의 영역에.. 더보기
로완 윌리엄스가 누구야? 로완 윌리엄스가 누구야? [강연후기] '신비로의 초대: 로완 윌리엄스의 신학'을 듣고 글. 설요한 _20150901 이 글은 강연후기라기보다는 로완 윌리엄스가 누구인지에 대한 소개글에 가깝습니다. 로완 윌리엄스의 책은 지난 2003년에 『기독교 영성입문』(The Wound of Knowledge, 은성 역간) 이후에 올해 들어서야 두 권의 책 『신뢰하는 삶』(Tokens of Trust, 비아 역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Being Christian, 복 있는 사람 역간)이 번역되었습니다. 로완 윌리엄스에 대한 언론의 기사는 종종 있었고, 특별히 성공회 사제이신 주낙현 신부님께서 본인의 홈페이지(http://viamedia.or.kr/)를 통해 지속적으로 소개하셨기에 우리나라에서도 계속해서 알려져.. 더보기
투투에게 배우는 한국교회의 미래 투투에게 한국교회의 미래를 배우다 [서평] 데스몬드 투투, 『용서 없이 미래 없다』 (홍종락 옮김, 홍성사, 2009) 글. 김광현 _20150827 한국사회에서 교회는 무력한 집단이다. 21세기에 어울리는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사회적 고통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건전한 시민들은 저항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이미 수십 년 전에 디트리히 본회퍼는 교회는 국가에 희생당한 이들을 돌보기만 해서는 안 되며 희생의 구조 자체를 전복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한국 교회는 아직 20세기 초 독일 신학자가 도달한 곳에도 이르지 못했다. 반면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미래의 세계 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을 앞당겨 성취해 냄으로써 가장 모범이 되는 .. 더보기
달의 영성으로의 초대 달의 영성으로의 초대 [서평]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 『어둠 속을 걷는 법』 (포이에마, 2015) 글. 홍동우 _20150825 우리는 행복해야만 하는가? 어제는 글이 잘 써진다. 하지만 오늘은 글이 잘 안 써진다. 어제는 매우 행복했다. 하지만 오늘은 매우 우울하다. 인생이 언제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삶의 리듬이 날씨에 의해서, 환경에 의해서, 그리고 주변 여건에 의해서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전엔 ‘강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조건과 환경을 극복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매일 행복하고 아름다우며, 강한 ‘나’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새 세월은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약해도 된다.. 더보기
이 깨어나는 의미들을 보라 이 깨어나는 의미들을 보라 [서평] 로완 윌리엄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복 있는 사람, 2015) 글. Via Unit _20150820 그리스도인들은 머리에 물을 붓거나 뿌리는 절차를 밟아 교회의 온전한 식구가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습니다. 함께 모여 떡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나사렛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필연적이고 항구적인 요소로 여겨지는 것은 이 네 가지 기본 행위입니다.(19) 1. 나사렛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일련의 과정은 누군가에게는 2000년 전 팔레스타인 지방에 살았던 한 남자의 생애에 불과할지 모른다. 좀 더 회의적인 이는 사실여부조차 불확실한 신화적인 이야기라 생각할 수도 있다... 더보기
신뢰하는 삶, 기독교 신앙의 기초 신뢰하는 삶, 기독교 신앙의 기초 [서평] 로완 윌리엄스, 『신뢰하는 삶』 (김병준․민경찬 옮김, 비아, 2015) 글. 설요한 _20150820 (※ 이 글에서는 하나님과 하느님, 성경과 성서, 기독교와 그리스도교라는 단어를 혼용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성경’,'기독교'라는 표현이 익숙해 대개의 경우 이 표현을 썼습니다. 하지만 『신뢰하는 삶』을 직접 인용할 때는 ‘하느님’,‘성서’,'그리스도교'를 썼습니다.) 기본(基本)? ‘생각의 양식으로 삼을 만한 책들을 많이 읽었어야 했는데...’ 가끔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한다. 특히 철학적인 표현을 많이 쓰는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 말이다. 이런 표현들을 소화할 만한 능력이 내게는 없다고 느낀다. 자주 쓰이는 철학적 표현들은 그만큼 그 의미들이 고민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