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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한 가운데

어느 칼빈주의자(?)의 바르트 학원 수강기 ①


칼 바르트 <개신교 신학 입문> 강연(1/4강) 후기 

※ 이 글은 지난 8일부터 시작된, <현대기독연구원>이 주최하는 <개신교 신학입문 강독 세미나> 첫 번째 강의에 대한 설요한 기획/편집위원의 글입니다. 세미나가 진행되는 4주 동안 함께 총 4회에 걸쳐 후기 글을 <광장, 청춘>에 게재합니다. 






칼빈주의자의 바르트 입문?


바르트보다는 칼빈, 오웬, 튜레틴, 워필드, 바빙크, 벌코프 등의 이름이 친숙하다. 이들은 칼빈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실은 내가 칼빈주의자인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보통 ‘~주의자’는 외부에서 붙여 주는 표현이 아니었던가. 칼빈주의를 내 정체성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것은 내가 걸어왔던 길을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직은 '형성 과정 중에 있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삼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전문적으로 신학적 논의를 하기에는 아직 미숙한 사람인데 “신학적으로 보면 저는 ~주의자입니다.” 하고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모태신앙으로 자랐다. 스무 살 넘어 로이드 존스를 만났고 청교도를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거슬러 올라가 칼빈을 만났다. 그 이전 시기에는 선별적으로 어거스틴을 만났다. 한국의 일각에서는 익숙한 흐름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흐름을 따라 오웬, 에드워즈, 벌코프, 바빙크 등을 만난다. 그러던 어느 날, 곁눈질로만 보던 바르트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사실 바르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물론, 그동안 주워 들은 것은 좀 있다. “바르트는 성경의 영감을 부정해. 왜냐하면 성경을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야.” 라는 주장과 몇몇 신학자의 바르트에 대한 평가(예컨대 반틸), 그리고 그걸 암암리에 내가 내면화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이다.


독일신학에 대한 경계심은 은연중에 '자유주의 신학의 원산지'라는 이미지와 오버랩 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관심의 방향이 신학보다는 철학과 정치학, 관심 있는 사람과 분야는 칸트와 헤겔, 마르크스와 니체, 현상학과 정치철학으로 자연스럽게 선회하면서 독일신학에 조금씩 곁눈질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바르트는 자유주의자인가?’에서 ‘왜 바르트는 계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독일이라는 현실 속에서 바르트의 신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로 바뀐 것이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내가 이전에 갖고 있던 ‘바르트에 대한 선입견’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르트의 고민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선입견은 다른 이의 평가를 그저 이식받은 정도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설령 나의 마지막 결론이 ‘바르트를 이러저러하게 규정한 자들’과 같이 나온다 하더라도, 일단 바르트의 고민을 통과해 보기로 했다. 누군가가 내 귀에 들려 주는 그런 바르트가 아닌, 바르트 자신의 말을 듣고 싶었다.

(※‘성경’과 ‘성서’ 중 무엇이 맞는가 하는 것은 나로서는 잘 모르는 일이다. 여기서 경과 서의 차이를 엄청 깊이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혼용해서 쓰도록 하겠다.)





바르트 신학의 중심: 나사렛 예수의 인격


최근에 칼 바르트의 『개신교 신학 입문』(복있는사람)이 새로 번역되었다. 이전에 『복음주의 신학 입문』(크리스챤다이제스트)이라고 번역된 『Einführung in die evangelische Theologie』를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역자인 신준호 선생님이 현대기독연구원에서 4주짜리 강연을 하고 있다. 오호, 마침 기회다. 첫 주 강연에 참석하였다.


일단 신준호 선생님의 첫 강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드넓은 바르트 신학의 지평에서 중심을 잡아 주는 것은 바로 ‘나사렛 예수의 인격’이다. ‘나사렛 예수의 인격 안에서 창조자 하나님이 등장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나사렛 예수는 ‘인격’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적중한다는 것이 바르트의 논리다.


바르트에 따르면 신학의 자리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의 인간성 안에서 말씀하신다. 그래서 신학의 법도는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다. 바르트는 틸리히와 달리 세상과의 상관관계를 단호히 거부했다. 하지만 바르트가 문화와의 대화 단절을 말한 것은 아니다.


예수의 인격은 역사로 펼쳐진다. 구약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약속이 반복되는 끊임없는 계약의 역사이고,  이러한 계약이 인간의 계속되는 배신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한다. 나사렛 예수의 실존과 등장, 사역과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역사가 완성된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놀라움'이다. 놀람은 예수가 행한 기적으로부터 오고,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사건을 통해서 온다.


이제 중립적인 신학자는 없다. 주체가 하나님의 기적을 객체로 바라볼 때 그 객체는 주체에게 최후 결정의 여지를 남겨 두지 않는다. 대상으로부터 떨어진 고립된 자아는 없다. ‘세상’이 심판 안에 있고 그러면서도 구원의 희망 안에 있다. 이를 깨달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그 공동체 안에서 ‘내가’ 말씀을 배운다.


최초의 증인들이 이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이 증인들의 증거를 들은 사람들이 성서를 기록했다. 그리고 우리는 성서를 통해 말씀을 전해 듣는 3차 증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다. 그리고 최초의 증인들과 같은 자리에 앉으려 해서는 안 된다.


신학의 자리 역시 최초의 증인들 옆이 아니다.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성서를 좌지우지하려 해서는 안 된다(개혁신학 비판). 또한 신학자들이 성서의 증인들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말씀 그 자체보다 우월할 수는 없다(종교다원주의, 종교철학 비판). 신학은 성서 안에서 다성의 소리를 듣는다는 점에서 ‘다원적’이다. 하지만 이 때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그 중심은 우주의 중심이신 나사렛 예수이다.





바르트의 계시 이해?


신준호 선생님의 강연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그리고 바르트의 『개신교 신학 입문』을 제대로 읽었다면, 바르트에게 있어서 성경은 증인들의 증언을 기록한 것이다. 구약 전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약속의 역사에 대한 증인들의 증언이다. 그리고 이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격으로 나타났고 그것을 본 증인들의 증언을 기록한 것이 신약이다.


왜 바르트 비판자들이 바르트를 비판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바르트에 따르면 ‘성경 그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하다. 바르트는 애써 그러한 표현을 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르트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낮추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사렛 예수의 인격 안에서 ‘말씀’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 말씀의 ‘기록’이 곧 성경이다. 그리고 이후의 모든 신학자들은 어느 누구도 ‘말씀’과 나란히 서거나 앞설 수 없다. 실은 이 지점에서 바르트 비판자들의 주장과 바르트의 견해가 조금 엇나간다는 느낌을 받지만 지금으로써는 심증만 있을 뿐이다. 


참고로 19-20세기 3대 칼빈주의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벤자민 워필드의 경우, 당시의 독일 자유주의 신학(바르트의 표현에 따르면 신개신교주의)에 대항하여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성경의 자증성’이다(역사적 논의를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역사적으로 성경의 자증성을 의심하는 신학자는 거의 없었다는 논의). 성경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서학의 논의를 잘 알지 못해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성경 저자에 대한 권위는 칼빈주의(개혁주의라고 봐도 무방할 듯)에서는 일종의 인식론적 토대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성경의 자증성 원리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 내에 나타나는 문자적 불일치는 어떻게 하는가? 그것은 사본의 오류이거나(성경 무오는 성경 원본의 무오를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신학적 해석학을 통해 조화를 시도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성경 저자의 입에서 나온 말, 손으로 쓴 내용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계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쓰셔서 자신의 말을 하신 것이다. (워필드에 대한 나의 이해는 최근에 번역된 프레드 재스펠의 『한 권으로 읽는 워필드 신학』 23-269쪽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바르트의 계시 이해는 이와 다르다. (어디선가 주워 들은 말이지만) 바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절대 타자’이기에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를 담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성경의 저자들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물론 바르트가 성경 저자들의 위치를 그 이후의 사람들이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격상시켜 놓았지만 그럼에도 이 점은 변하지 않는다. 개혁신학에서는 성경 저자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이다. 물론 저자의 모든 말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남겨 성경으로 전해진, 바로 그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이해한 차이는 여기까지다.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몇 주간 이 점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


바르트의 『개신교 신학 입문』이 1960년대에 쓰여진 것을 생각한다면 당시 바르트는 자신에게 가해진 비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실은 이날 강의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바르트는 이 책 4강(공동체)에서 특정 신학 경향에 대해 비판하는 대목이 나온다. 바르트에게 있어 신학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보다 아래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말씀까지도 규정하려고 하는 신학’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축조된 신조들을 (예를 들어 그것이 오래되고 널리 알려져 있고 유명하다고 해서) 모든 상황에 적용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소위 전승에 충실하다는 어떤 완고한 정통주의의 명성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 그와 같은 정통주의보다 더 나쁜 이단은 없다!”(『개신교 신학 입문』 53쪽). 어떤 사람들이 들으면 분개할 말 아닌가? 실은 한국의 대다수 장로교단의 신앙고백에 준거했을 때 이런 바르트의 말은 상당히 불편하다. 그런데 바르트는 “개신교 신학은 오직 한 가지의 충실함만 알고 행사한다. 이 충실함은 믿음의 지성에 근거한 고대교회 그리고 종교개혁의 신앙고백에 대한 충실함이다”(53-54쪽)라고도 말한다. 같은 고대교회, 종교개혁의 후예인데 서로 다른 이해가 있을 수 있는가? 아니면 오해가 발생한 것인가? 이 문제는 특정 교단의 지역교회에 속해 있는 내게 주어진 개인적인 숙제다. (신준호 선생님은 ‘분명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계속해서 질문만 던지는, 배움의 노정에서


최근에 정희진 선생님의 『정희진처럼 읽기』(교양인)를 읽었다. 이 책 내용 가운데 내 관심을 사로잡은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사회적 약자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부당한 질문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희진 선생은 “너 빨갱이지?” “폭력적이지?” “게으르지?” “더럽지?” 등을 이러한 질문의 예로 든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신으로부터 면허라도 받았는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정희진처럼 읽기』, 215쪽). 섬뜩하다. 내게는 “너 자유주의자지?” “너 바르티안이지?” “너 칼빈주의자지?” 하고 신의 이름으로 던지는 질문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강영안 교수님은 지난 11월에 있었던 기윤실 월례포럼에서 카이퍼와 바빙크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들(그런 개혁신학자들)이 탁월한 지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은 소위 자유주의로 평가하는) 당대의 학문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아주 깊이 천착하고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칼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인문주의자로서의 칼빈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칼빈, 바빙크, 카이퍼는 자신이 살던 시기의 지식체계와 ‘현실 문제’를 ‘신학적으로 돌파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그간 이해하고 있던 교의학의 스펙트럼 내에서 바르트는 ‘신정통주의자’이면서, 하나님의 예정에 있어서는 ‘타락전 선택설’(Supralapsarianism)에 가까운 주장을 한 신학자이다. 이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가장 강력하게 생각하는 입장이다. 동시에 바르트는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존경하던 스승들이 전쟁에 대한 지지 서명을 하는 것을 보고 자유주의 신학과 결별한 신학자였다(정승훈, 『칼 바르트와 동시대성의 신학』). 


이와 관련해서 이번 강연에서 개인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과제는 '원숙한 시기의 바르트 신학은 어떤 것이었고, 그 신학은 그의 현실 이해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하는 것이다. 또한 더 확장하자면, '바르트의 신학에서 하나님은 현실에 어떻게 침투하실까?', '바르트의 신학은 어떻게 그의 삶을 현실로 인도했으며, 바르멘 선언에까지 이르게 했을까?'라는 과제이다. 과연 4주 안에 조금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사족. 신준호 선생님이 근대 자유주의 신학의 과학적 방법론과 바르트 신학을 대비하면서 들었던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해서는 유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양자역학을 그렇게 사용하는 것은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불확정성 원리는 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두 측정값 사이의 부정확도를 어느 수준 이하로는 줄일 수 없다는 말이다. 즉 입자는 ‘확률로 분포되어’ 있다. 양자역학이 기존 뉴턴의 3대 법칙으로 움직이는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는 했지만 이것이 철학적으로 활용되어 계몽주의 이성의 한계를 지적하는 방향으로 쉽사리 나아가는 것은 불확정성 원리가 원래 나타내고자 하는 바에서 살짝 벗어난 것이라고 본다. ‘근대 자유주의 : 바르트 신학 = 뉴턴 물리학 : 양자 역학’ 이라는 도식은 비록 유비로 사용했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실은, 이런 식으로 양자 역학을 쓰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종종 듣는다.






설요한  /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신앙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취업과 미래 걱정을 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기독교 읽기’를 취미로 삼아 버렸다. 
덕분에 기독교와 사회에 대한 고민은 갖지만 차마 사회에 뛰어들지는 못하는 실천적 이원론자가 되어 버렸다. 
기독교가 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고민하는 중에 있다.
<광장, 청춘> 기획/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