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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한 가운데

[인터뷰] 영화를 본다는 것은



※ 이 기사는 영화업계에서 일하다가 2014년부터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목회학 연구과정을 시작한 강도영씨와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 <인터스텔라> 한국 홈페이지



영화와 함께 했던 시간들

일단 자기소개를 좀 부탁드릴게요. 

강도영(이하 강): 처음에는 케이블 TV 영화 채널에서 일했어요. 그곳에서는 어떤 영화를 사야할지 검토하는 역할을 했지요. 국내외 배급사들에게 받은 영화들을 검토하면서 시청률이 잘 나올 것 같은 영화들을 가려내는 작업이죠. 그 당시는 영화 채널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초기였는데, 혹시 OOO이란 영화 채널 아세요? 


어, 지금도 있지 않나요? 

강: 네, 맞아요. 당시 새벽 12시가 넘어가는 심야시간에는 야한 영화도 틀 수가 있었어요. 지금은 청소년 보호법이 강화돼서 많이 힘들어졌지만, 그 당시에는 가능했었죠. 그럼 심야시간에 어떤 야한 영화를 방송할지 검토해야 했기 때문에 19금 영화를 계속 봐야만 했죠. 


(킬킬거리며) 고된 일 하셨네요. 

강: 너무 야하면 방송을 할 수 없거든요. 제가 봐서 너무 야하면 방송리스트에서 탈락시켜야 하는 거죠. 쉽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케이블도 (심의) 수준이 있을 테니까요

강: 네. 너무 야한 건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 하는데 이걸 판명하려면 결국 봐야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야한 영화를 쌓아놓고 봤어요. 영혼 없이 앉아서... 하루는 팀장님이 저한테 야한 영화 좀 빨리 보라고 하시면서 야, 그게 너 밥 먹여주는 거야라고 농반진반으로 하시는데 저는 속으로 내가 ‘이걸 위해서 영화 공부한 게 아닌데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하는 고민이 들기도 했어요. 


그럼 전공도 영화로 하셨나 봐요? 

강: 학부는 방송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한국영화의 해외진출에 대한 내용으로 논문을 썼어요. 그래서 영화계에 들어가서도 영화 수출입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었고요. 하지만 막상 영화 채널에 들어와 보니 여기서는 시청률 이라는 잣대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국 공채로 들어갔던 회사에서 나와 영화사로 이직했어요. 거기서는 해외마켓에서 영화를 사와 배급팀에게 넘기는 일을 하거나, 아니면 제가 직접 배급까지 겸하는 등의 일을 했어요. 


논문 쓰신 대로 그 일을 한거네요

강: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사람들은 제가 했던 일에 대해서 뭔가 대단하게 보는 시선이 있었어요. 프랑스 깐느나 독일 베를린영화제 등에 다니면서 영화 수입하는 일을 하고, 외국 배우들의 해외 인터뷰 하는 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말이죠. 


듣는 저도 당장 오우, 이런 생각 드는데요. 

강: 영화를 수입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수입해온 영화가 잘 되는 걸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인지도가 낮은 영화를 수입 했는데 히트 치게 된다던지 말이죠. 예를 들자면 <비긴 어게인> 같은 영화가 그런 케이스가 될 것 같아요. 저도 <비긴 어게인> 수입하는 것을 검토한 적이 있었거든요. 


진짜요? 

강: 네. 영화의 기획 초기 단계 때 여주인공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아니라 스칼렛 요한슨이었어요. 잘 안 알려져 있기도 한데 스칼렛 요한슨은 가수이기도 하거든요. 평소 목소리도 그렇지만 허스키한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이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비긴 어게인> OST만 생각하면 스칼렛의 목소리가 더 잘 어울렸을 지도 모르겠어요. 아담 리바인과의 캐미는 어땠을지 모르지만요. 어쨌든 이 영화를 판매하는 세일즈 회사가 영화의 가격으로 약 3억 원 정도를 요구하는 거예요. 보통 이 정도 영화면 1~2억 정도가 적당하다고 봤어요. 만약 수입비가 3억 정도라면 보통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에 이것저것 더해서 총 10억 정도의 투자비용이 들어가게 됩니다. 투자비용 대비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관객 수가 얼마나 돼야 하는지 그림이 나오는데,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영화의 성공여부에서 긴가민가했던 거죠.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3백만 명이 넘게 봤어요. 아마 작년에 개봉한 다양성 영화 중 가장 관객이 많이 들었을 겁니다.  


그렇게 많이 봤었나요? (*편집자 주 : 총 관객 수는 342만 명이다.) 

강: 네. 원래 그 정도 영화면 관객 수 50만 정도를 넘기면 잘됐다 라고들 할 수 있는데, 3백만이 봤으니 그야말로 초대박이 난거죠. 


정말 흥행을 예측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군요. 

강: 맞아요. 아무튼 이 영화를 수입한 회사는 굉장히 짜릿 했을 거에요. 



ⓒ 느헤미야 배간사


재미있게 영화 일을 하다가 신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가 있나요? 

강: 제가 매년 여름마다 해외 단기선교를 다녀왔어요. 그런데 다녀오기만 하면 신학공부해서 선교사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목사님이신 아버지께 고민을 말씀드리면 너 언제까지 이렇게 고민만 할거냐는 말씀을 줄곧 하셨죠. 또 한 가지는 제가 가게 된 회사마다 일이 잘 안 풀렸어요. 팀이 와해된다거나 일이 없어진다거나 했죠. 느헤미야 오기 직전에는 부산영화제에서 만든 배급사에서 일했는데요. 함께 일하는 팀장님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있던 터였죠. 그런데 그 팀장님이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 “도영씨는 상업영화보다는 영화, 문화 운동 쪽에서 일하는 게 더 맞아 보여.” 라고 하시는 거에요. 


뭔가 그 대화가 결정적 계기가 된 거군요. 

강: 네. 그 때 이후로 결국 신학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됐어요. 어느 신학교를 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느헤미야에서 목회학 연구과정이 시작 된 거예요. 어차피 나는 전통적인 방식의 목회에 대한 꿈을 가진 사람은 아니니까, 느헤미야에서 공부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목회 방법을 찾아보자 생각했습니다. 



트릴로지의 예언서적 서사

그러셨군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혹시 최근 10년 안에 봤던 영화 중에 베스트를 꼽으신다면 뭐가 있을까요? 

강: 굳이 꼽아보자면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부작과 <호빗> 3부작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인 것 같아요. 


전부 3부작 시리즈를 꼽으셨네요.

강: 저는 기독교인들이 <반지의 제왕>같은 트릴로지(3부작) 판타지 영화에 관심을 많이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원작자인 톨킨이 그리스도교 신자이기도 하고요. (* 편집자주 : 더 정확히 하자면 가톨릭 신자이다.) 톨킨의 트릴로지는 항상 여행이 기본 포맷이에요. 그리고 여행을 하는 주인공들이 있는데 그들은 일반적으로 영화 주인공이 될 법한 인물들은 아닌 사람들로 그려지죠. 다 조금씩 미천한 존재들이에요. 그들이 떠나는 이 여행의 끝에는 항상 약속이 있어요. 영화 <호빗> 같은 경우는 왕권의 회복이고요. 그래서 1편에서는 여행의 목표가 주어지고 이를 달성하라는 미션을 상정하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그리고 2편에 가면 그들은 다양한 도전을 헤쳐 나가게 됩니다. 이기고 지는 작은 전투들을 반복하다가 결국 아주 큰 악의 세력을 조우하면서 끝이나요. 일반적으로 2편은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많이 암울하죠. 희망이 안 보이는 것처럼. 



<호빗: 다섯군대의 전투>


그러네요. <반지의 제왕>도 그렇고 <호빗>도 그랬죠. 

강: 네. 트릴로지에서 2편은 대부분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조에요. 그런 2편의 현실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3편에 가서는 악이 승리할 것 같지만 결국 더 큰 선 앞에 악은 무릎을 꿇습니다. 이런 트릴로지의 구조와 내용을 굳이 성경에서 찾아보자면 다니엘서가 말하는 내용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느껴져요. 다니엘서는 악한 세력에게 지배당하고 고통 받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 나라를 멸망시킨 나라로 끌려간 젊은이들의 긴 여행을 바탕으로 풀어가고 있어요. 낮선 땅에 끌려와 살아가는 지금은 비록 매우 힘들지만 그 시간들을 참고 버티라고 강권 합니다. 왜냐하면 악의 지배는 결국 끝이 있기 때문이죠. 그 끝에는 진정한 왕, 메시아가 와서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강한 믿음과 왕권의 회복에 대한 확신이 있는 거죠. <호빗>이나 <반지의 제왕>과 같은 판타지물에도 이와 유사한 메시지와 구조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판타지 영화를 그냥 즐기고 끝낼 수도 있겠지만, 이런 판타지 영화의 서사를 익히면서 감상한다면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지점들이 생깁니다. 만약 지금 자신이, 또는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이 이렇게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면 언젠가는 진정한 승리와 회복의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돌아보게 하는 거죠. 영화를 통해서. 



근본주의적 영화해석에 반대한다

판타지의 트릴로지 서사를 다니엘서의 내용과 대입시키는 해석이 참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이런 문화 해석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데요. 도영씨와 저는 동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더 공감이 될 것 같아요. 저희 학창시절 당시 신상언씨가 주도하는 문화사역이 상당히 반응을 얻었잖아요. 그런데 신상언씨가 말하는 대로면 제가 즐기는 문화적인 것들은 다 악한 거였어요. 그래서 저는 어린 마음에도 그랬지만 이런 신상언 류의 문화 패러다임에 굉장히 억눌렸던 것 같아요. 

강: 동감합니다. 당시에는 문화를 해석할 수 있는 틀이 너무 제한적이었던 거죠. 하지만 여전히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 같아요. 문화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치지만, 문화 해석의 틀을 다양하게 제공해주는 사람은 여전히 많이 없다는 거예요. 여전히 교회는 아주 보수적인 문화 해석의 틀을 가지고 문화에 접근하고 있어요. 저는 이런 상황에 발란스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도 평론이나 세미나 같은 것을 하면서 좀 더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영화를 포함한 문화의 신학적 해석에 대한 시도에요.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영화를 포함해서 보수적인 문화해석에서 벗어나 조금 더 스스로 진취적인 해석을 해낼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올려지는 장면이 있는데요. 레이디 가가가 내한공연을 해서 한참 시끄러울 때였는데요. 100분 토론이 레이디 가가와 동성애에 대한 주제를 다뤘는데 당시 토론 패널이 진보쪽 패널에는 진중권씨하고 황진미 영화평론가였고, 보수쪽 패널에는 그 중 한명이 그 이후에 십알단 주동자로 밝혀졌던 윤정훈 목사였어요. 거기서 윤정훈 목사가 뭐라고 하냐면, 구약 성경에 동성애자들은 다 죽이라고 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명백한 죄다, 라고 하는거에요. 그러니까 진중권씨가 어이없어 하면서 한 마디 던집니다. “그럼 죽이세요.” 저는 이 때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이 장면이 마치 문화를 대하는 한국 기독교의 현실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강: 영화에 대한 철학적이고 문화적인 접근과 해석 그리고 그런 정보를 유통하려는 노력이 아직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 같아요. 사실 청어람 같은 기관들이 기독교 세계관 운동과 함께 기독교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의 틀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운동들이 대중적으로 퍼지기가 쉽지 않은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에요. 영화, 음악, 문화가 일상생활에 어떻게 접목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죠. 결국 교회가 그런 역할을 못해주고 있으니깐 진중권 같은 일반 영역에서의 문화 평론가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고요.


기독교인들은 영화를 너무 직선적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요. 

강: 네. 최근에 유독 우리나라에서 흥행했던 <인터스텔라>의 경우에서도 종교적으로 해석할 만한 접점들이 꽤 있었잖아요. 예를 들어 ‘그들’이란 존재의 의미라든가요.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이런 초월적인 존재가 영화에 등장하면 너무 쉽게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등을 대입해 버려요. 기독교인에게 너무 익숙한 개념들이기 때문에. 


그렇죠. 

강: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인터스텔라>에서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로 읽을 수 있는 것이 ‘중력’이잖아요. 영화에 등장하는 ‘그들’은 중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간과 소통하고 있어요. 중력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힘이 있잖아요. 중력의 개념이 영화를 통해서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지속성’과 ‘초월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초월적이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지속적이고 초월적인 가치를 보여주는 ‘그들’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런 초월적 존재나 메시지는 기독교인들에게 그냥 쉽게 납득이 가고 자연스럽게 받아드릴 수 있는 것들이에요. 왜냐하면 태초에 천지를 만드시고 지금까지 이 세상을 유지하고 계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든가, 아니면 예수님이 이천년 전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죽으신 그 초월적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존재하는 ‘중력’의 힘처럼 우리에게도 강력한 메시지로 작용하고 있거든요. 지금 제가 하는 말과 단어들 자체가 비기독교인들에겐 전혀 납득이 안가겠지만요. 기독교인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거죠. 그래서 이런 영화를 보고 해석하고 느낄 때 어쩌면 치열한 고민 없이 그냥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익숙한 개념에 영화가 제시하고 있는 메시지를 대입하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초월적 사랑의 개념을 설명해내려고 ‘중력’이란 개념을 사용하고 ‘그들’이란 미지의 존재를 만들기도 하고 중요한 철학적 명제 들을 가지고 씨름합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진정성을 드러내죠. 그에 반해 기독교인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영적인 메시지로 수용해버리는 모습을 봅니다. 사유의 깊이는 결국 큰 차이로 드러나기 마련이잖아요. 


<인터스텔라>


너무 맹목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다양한 관점과 치열한 해석을 통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이 절실하네요. 

강: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선물’이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대 철학에서도 ‘선물’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하잖아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영화 속에서 ‘그들’은 인간에게 일방적인 호의를 베풉니다. 선물을 주는 거죠. 모든 것이 상호적이고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런 일방적인 선물은 ‘초월적’이고 또 ‘신적’인 행동으로 보고 있는데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전해준 선물과 베푼 호의는 초월적 의미를 담지하고 있다고 보는 거죠.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여기서 ‘그들’의 존재를 영적으로 해석하는 순간, 일반 관객들과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저도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많은 기독교인들이 어쩌면 하나님을 향한 지식의 추구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신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저 하나님의 절대성이라는 명제를 신봉하는 것으로 내 신앙을 퉁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걸 깬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놀란은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 아예 관심이 없잖아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절대적 추구에 과연 더 진정성이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됐어요. 신적 존재를 상대적 차원에 상정하고, 인간과 상호적인 위치로 두고 말아버리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쿠퍼의 모습이 더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과 <인터스텔라>

혹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중에 최고라고 생각하시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강: <다크 나이트>죠. 


저도 사실 <다크 나이트>거든요. 

강: <다크 나이트> 같은 영화는 2,000억의 예산을 가지고 만드는 영화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100억이면 대작이라고 하는데, 이건 2,000억이잖아요. 이런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영화를 만들면서 철학적 명제를 다루고,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점들을 지적하고, 명예에 대한 인간의 탐욕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다크 나이트>는 완벽하게 녹여냈죠. 

강: 그런 의미에서 놀란은 자기만의 길을 걸어 왔다는 사실이 대단한 거 같아요. 



크리스토퍼 놀란 / ⓒ <인터스텔라> 한국 홈페이지


그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인터스텔라>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어떤 부분을 인상 깊게 보셨는지가 궁금하네요. 

강: 네. 몇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종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면요. ‘재난영화는 성경의 종말론에 대한 주석이다’라는 말을 누가 했더라고요. 일반적으로 재난영화는 세상의 끝이 어떻게 또는 왜 오는지에 대한 부분과 어떻게 극복해 내는가에 대한 모티브를 가지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재난 영화의 결말에는 주로 등장하는 유형들이 있죠. 한 의인이 고난을 당함으로써, 그 고난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해방되는 류의 결말이라던가. 아니면 멸망하는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지만 탐욕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다가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으로 결국 탈출하는데 성공하는 이야기도 볼 수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유형은 지금 이 땅의 세계가 완전히 끝나고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재밌는 것은 사실 이런 주제들이 모두 성경 이야기에서 다뤄졌던 이야기들이란 것이에요. 


성경이 종말 이야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강: 맞아요. 성경에서 심판과 묵시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하는데, 재난영화에서도 이런 부분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재난영화를 볼 때 등장인물이 어떤 관점에서 이 세상을 보고 있는지 보면 흥미롭죠. 그런데 우리는 가장 근원적인 성경이라는 텍스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종말영화의 이런 메시지들을 더 흥미롭게 읽어내고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만 박사가 처음 등장할 때 좀 놀랐어요. 어느 곳에서도 캐스팅 라인업에 맷 데이먼을 보지 못했거든요. 살을 찌워서 그런지 처음에는 맷 데이먼이 맞나 하면서 봤었어요. 

강: 많은 사람들이 맷 데이먼이 나올 때부터가 영화의 변곡점이라고 이야길 하거든요. 만 박사 문 열고 깨어나자마자 막 울잖아요. 끌어안고. 혹시 그 울음의 의미를 어떻게 느끼셨나요? 


사실 제가 두 번을 봤거든요. 처음에는 그냥 보이는 대로 느꼈던 것 같아요. 사람을 향한 그리움? 그런데 두 번째 볼 때는 생각이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만 박사가 이미 그 때부터 연기를 시작한 거 아닌가 생각 들었어요. 근데 뭐라고 딱 꼬집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강: 네. 사실 거기서 그 의미가 명확하진 않으니까요. 그 장면을 어떻게 느끼던지 만 박사 내면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이긴 한 것 같습니다. 가장 뛰어났고 선구자적이었던 사람이 어떻게 혼자 살고자 하는 탐욕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지 보게 되죠. 이 영화 안에는 이런 인간 내면에 대한 묘사들이 참 디테일하게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만 박사와 또 한명의 주인공인 브랜드 교수(마이클 케인)에 대한 비교에요. 두 사람 다 나사 출신이고 당대 과학, 이성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사람들은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나를 믿어 달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사실이에요. 과학과 이성적 사유를 자신의 삶의 끝까지 밀고 갔던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종국에는 자신의 신념에 대한 이해보다는 믿음을 요구한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그들의 믿음에 대한 결론도 결국 거짓말로 드러납니다. 브랜드 교수는 애초부터 한계를 깨닫고 숨기면서 살았고, 만 박사도 나름 노력 했지만 그 역시 탐욕으로 점철된 비참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인터스텔라>는 이 두 사람의 비교를 통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념에 대한 태도, 마지막을 향해서 달려가는 상황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습을 유형화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 <인터스텔라> 한국 홈페이지


쿠퍼(매튜 맥커너히)와 딸 브랜드 박사(앤 해서웨이)는 이들과 대조를 이루죠

강: 네. 브랜드 교수는 평생을 과학에 바쳤지만 결국 자신의 신념으로 인한 거짓말을 사과하면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반면 그의 딸은 아버지와 동일하게 과학자이지만 이성보다는 사랑을 믿기로 선택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동료 과학자는 비이성적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사랑을 믿었기 때문에 희망을 찾는데 성공하죠. 이 프로젝트명이 ‘나사로 프로젝트’였잖아요. 죽었지만 예수님이 살려주신 나사로 말이죠. 이 ‘나사로’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쿠퍼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쿠퍼와 브랜드 박사가 만 박사를 찾아가 그를 오랜 잠에서 깨웠을 때 만 박사는 부분적인 부활을 맛봅니다. 하지만 그를 다시 생명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준 동료들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 탐욕으로 인해 무너져 버립니다. 반면 쿠퍼는 자기희생의 길을 택합니다. 성경적인 표현을 빌자면 십자가의 길, 일종의 ‘희생 제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진정한 나사로의 부활은 결국 쿠퍼를 통해 이루어진 거죠.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사랑을 선택하고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살리려는 쿠퍼를 통해 브랜드 박사는 소망의 땅으로 보내졌고 ‘나사로 프로젝트’는 성공하게 됩니다. 결국 진짜 부활을 경험한건 죽음과 희생을 선택한 쿠퍼였습니다.  


그나저나 한국에서 <인터스텔라>의 흥행 돌풍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북미나 유럽 쪽에서는 그렇게 흥행이 잘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아요. 

강: 네. 사실 전 세계적으로는 <인터스텔라>가 그렇게 큰 인기를 끌고 있지는 않아요 놀란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무게감이 많이 떨어지죠.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놀란의 인기가 대단한 것 같아요.  


<덤앤더머2> 나오니까 바로 밀리고. (웃음) 

강: 첫 주에도 지금 한국에서 개봉중인 <빅 히어로>에 1위 자리를 내줬었어요. 왜 그런 걸로 홍보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인터스텔라>는 유럽에서도 그다지 인기가 높지 않았어요. 저는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면, 사실 유럽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나 보여주는 표현방식에 대해서 이미 상당히 노출돼 있었고 또 고민해왔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졌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유럽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새로운 시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한국과 중국에서만 인기가 대단했거든요. 이런 방식으로 주제를 풀어가는 것이 낯선 건 한국과 중국 두 나라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



섣부른 해석 이전에 텍스트에 집중을 

오늘 개인적인 이야기를 시작으로 영화에 대한 상당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강: 네. 두서없이 이야기를 하다보니깐 여기까지 왔네요.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정리를 해보자면 핵심은 영화라는 텍스트를 잘 보고, 느끼고, 해석하자는 말로 결론을 맺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라는 매체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더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비교적 저렴하게 아주 완성도 높은 예술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개봉해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에도 이념 논란이 있었는데, 저는 이념에 대해 논하기 전에 텍스트를 꼼꼼히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의 내용이나 대사들을 디테일하게 보고나면 영화가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나서 그것이 편향됐는지 아닌지를 이야기 하면 되죠. 그런데 우리에겐 특히 교회 내에서 그런 작업은 없고 그냥 무턱대고 영화를 빙자해서 정치 이야기, 이념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니깐 답답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노아>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근본적인 성경 해석과 내용이 조금 다르고, 마음이 불편하다고 무조건 영화를 보지말자 하면 어떻게 대화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아직까지도 한국 교회는 입맛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가장 먼저 하는 게 보이콧이잖아요. 뭔가 조금이라도 의심스럽거나, 자신의 가르침과 다른 것이 나오면 긴장하고 등을 돌려버립니다. 저는 그러기 전에 영화를 잘 감상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미 우리 안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는 문화의 영향력으로부터 도망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내 일상 안에서 끌어안고 다양한 신학적 틀을 가지고 진취적으로 해석하는 작업까지 해낼 수 있을 때 우리 삶은 한층 더 풍성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 / 교정 : 송지훈(광장,청춘 기획/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