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스

광장,청춘 ‘북스’ 2호를 발행하며




“젊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다른 각도에서 같은 작업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위험을 각오하고 뭉쳐 무엇이든지 감행하는 데 일치 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 그러면 승리는 따논 것이나 다름없다.” 위험을 각오하고 뭉쳐 일치 단결하자. 승리는 따논 것이나 다름없다. 20대 초반 셸링이 친구 헤겔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이미 칸트와 피히테 철학의 핵심을 간파했다고 자부했으며, 패기넘치는 투쟁 끝에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세계를 열었습니다.


얼마 전, 일본에서는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30대가 새로운 학문 세대로 떠올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청년 세대가 중요한 번역서와 저작을 내놓기 시작했고, 대학의 새대교체도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꽤나 부러운 일입니다. 얼마 전 서점에서 본 <생각해봤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 떠오릅니다. ‘내일을 바꾸기 위해 오늘 꼭 알아야 할 우리 시대의 지식’이라는 부제를 단, 현실을 전복하기 위해 우리의 사유부터 뒤집어버리자는 저 ‘젊은’ 책을 쓴 세 명의 저자는 각각 56년, 59년, 63년에 태어났습니다. 저 책은 한국 학계, 언론계, 종교계의 한 은유인 것만 같습니다.


우리 시대의 셸링과 헤겔이 뛰어노는 마당이 있다면 좋겠다. 기독 청년의 목소리가 떠들썩하게 울리는 광장이 있으면 좋겠다. ‘광장 청춘’을 시작하는 우리의 마음이 꼭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이 광장을 일치 단결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전장으로 만들고 싶은 건 아닙니다. 공허한 독백으로 채우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대화입니다. 어쩌면 서툴고 조금은 거칠더라도 걸려온 말에 성실히 응답하고, 다시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거는 소리가 가득한 즐거운 광장. ‘광장,청춘’은 그런 청춘의 광장을 꿈꿉니다.


-


‘광장,청춘’은 책이라는 형태로 걸려온 말과의 대화를 모은 ‘북스’를 분기마다 발행합니다. 이번 ‘북스 2호’의 대화 상대자는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와 폴 틸리히입니다. 2015년은 각각 본회퍼 사후 70주기, 틸리히 사후 50주기인 해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두 번의 세계대전, 파시즘적 열광,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의 한복판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시대에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 듣고, 그 싸움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울림과 통찰을 주는지 생각해보려 합니다.


이들 거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독서가 필요할까요. 우린 그 독서의 시작이 될 만한 책을 몇 권 골라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선택 기준은 이렇습니다. 신학자 - 동시대인 - 목회자. <성도의 교제>와 <조직신학>을 통해서는 조직신학자로서의 본회퍼와 틸리히를, <윤리학>과 <문화신학>으로는 동시대와 대화한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살펴봅니다. 그들이 꿈꾼 목회가 어떤 것이었는지 알기 위해 설교집도 살펴봅니다.


이번에도 많은 분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대학원에서 본회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본회퍼 전문가 김성호 목사님, 틸리히의 구원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신 남성민 목사님,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하신 한문덕 목사님, 비아 출판사 편집장이자 여러 권의 번역서를 내신 종교철학 전공자 민경찬 님, 대학원에서 본회퍼와 키에르케고르를 공부하시는 김광현 님 등. 모두 본회퍼와 틸리히 신학에 전문성을 갖춘 분들입니다. 보내주신 원고와 마음, 모두 감사드립니다.


틸리히와 본회퍼 신학의 국내 최고 전문가 두 분께서 보내 주신 특별 기고도 준비 되어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종교철학과에서 기독교 신학과 현대 철학을 가르치시는 정재현 교수님께서는 “폴 틸리히: 믿음이 말 되게 하려고 한 사람”이라는 글을 통해 틸리히 신학의 방법론을 알기 쉽게 정리해주셨습니다.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본회퍼 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고, 숭실교회 담임 목회자로 사역 중이신 김현수 목사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위한 디트리히 본회퍼의 한 마디”라는 제목으로 본회퍼 신학의 현재적 가치를 설명해주셨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더 이상 교회 밖에서 말이 되고 뜻이 통하는 믿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무수한 상식적인 사람들을 향해서 나에게 이미 익숙한 언어로만 동어반복적으로 되뇌이지 말고, 소통 가능한, 그래서 보다 설득력 있는 생각과 말로 믿음의 꼴과 얼을 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직도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몫일 것이다.”   

(정재현, “폴 틸리히: 믿음이 말 되게 하려고 한 사람”)



2015년.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이 이토록 무거운 건, 올해 일어난 그 많은 말도 안 되는 사건들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묻고 싶은 건 오히려 오늘날 신앙의 의미, 교회의 가치입니다. 기독교의 뿌리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을 건 기적 같은 사건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교회는 동시대의 말로 진리를 전달하는 일에 너무나도 서툽니다. 그 결과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세계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머물 자리입니다. 정재현 교수님의 지적처럼, 영원한 말씀의 현재적 자리와 통로를 확보하는 일이야 말로 여전히 진리를 붙들고 사는 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을 담아 몇 편의 글을 엮어 여러분 앞에 내놓습니다. 바라건대, 부디 세상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우리의 말이 더 능숙해지기를.





편집위원 홍동우, 최경환, 송지훈, 설요한, 김영수를 대표하며
2015. 12. 14. 김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