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산다는 것
나의 초보 시골살이 그리고 이웃
시골로 이사와서 가장 좋은 것은 맑은 공기도, 집 근처 맑은 하천도, 구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수많은 별들도 아니었다. 바로 앞집 할아버지네를 이웃으로 만난 것을 꼽고 싶다. 나와 아내는 이미 아버님, 어머님으로 부르는(그렇게 부르라고 하셨다) 이 가족을 만난 것이 우리 시골살이의 가장 큰 수확이자 감사의 제목이다.
도회지에 살다가 시골로 이사온 사람들이 거의 다 그렇듯, 지난 여름에 이사와서 한동안은 이 동네사람들과 별다른 왕래가 없었다. 오자마자 동네 마을회관에 나가 닭죽도 얻어먹고 눈도장도 찍어드리긴 했으나 그 뿐이었다. 앞집과도 서로 소 닭보듯, 닭 소보듯 멀뚱이 지나치며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목례나 하고 지내는 처지였었다. 아내는 양평에서 이천까지 출퇴근을 하고, 나는 대안학교에서 밤낮으로 교사일을 하고 있던 때라(지금은 둘 다 백수 ㅡㅡ;) 이웃 돌아볼 짬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가을햇살이 아직 따뜻하게 남아있을 무렵, 식당용으로 지어서 샌드위치 판넬 한 장으로 만들어진 우리집을 어떻게 해야 겨울을 무탈하게 날 수 있을까 고민하여 주물난로도 월곡동까지 가서 중고로 사다 나르고, 한겹 창문의 겨울 웃풍이 무서워 인터넷으로 천을 끊어다가 커텐도 두꺼운 놈으로 여기저기 만들어 달고, 집 현관 턱에 빙 둘러가며 비닐도 쳤다. 그런데 비닐치는 게 생각보다 수월치가 않았다. 하루 한낮을 낑낑대며 (그렇지만 나름대로 성취감도 느끼면서, 이 정도면 훌륭하다는 자뻑..) 비닐을 두르고 있는데 앞집 할아버지께서 지나가시다가 왠일로 우리 집 앞까지 오셔서 특유의 무뚝뚝하고 동시에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거셨다.
“비닐치게?”
비닐을 그렇게 치면 겨울에 다 찢어진다며 이리저리 둘러보시더니 찬찬히 다시 당신 집으로 들어가신다. 그리고 잠시 후 손에 전동드라이버, 비닐하우스용 철사대 몇개와 알미늄 쫄대를 들고 오셨다. 내가 얼기설기 박스테이프로 이어놓은 비닐에 할아버지가 대를 세우고 쫄대를 박고 그 사이에 비닐을 고정하니까 어느새 제법 튼튼한 모양새를 갖추어졌다(나는 손에 박스테이프를 들고 감탄만 하고 있었다). 한 쪽 벽에 지지할 게 없다며 우리 집 뒤꼍 각목 하나를 집어드시더니 숭덩 잘라서 바닥에 박고 고정틀을 만드신다. 그리고 그 위로 비닐을 쫄대 박아 만드시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다 완성이다. 일 다 끝났셨다고 들어가시길래 연장을 주워서 따라 들어갔다. 석 달 넘게 데면데면하던 것은 온데간데 없고 어느새 고마운 동네 어르신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또 무뚝뚝하게 말씀하신다.
“저녁에 식구들 데리고 밥 먹으러 와. 막걸리나 한잔 하게”
그렇게 우린 이웃이 되었고, 식구가 되었고, 가족이 되었다. 시골 반찬을 나눠먹고(라고 쓰고 얻어먹는다고 읽는다), 커피 하나 설탕 하나 넣고 휘휘저어 다같이 달게 마시기도 한다. 초등학교 3,4학년된 그 집 아이들도 우리집 1학년 하은이, 6살난 하진이와 서로 언니동생, 누나동생하며 잘 논다. 어머님은 당신들 밭에서 파도 뽑아먹고 시금치도 뽑아먹으라면서 '부지런히 먹지' 못하는 우리를 향해 성화를 내신다. 얻어먹기 죄송스러워 가끔 마트에 나가 사온 걸 보시는 날엔 “미쳤다 얘, 돈이 썩어나니”라면서 혼을 내신다. 이 외에도 동네물정에 어두운 우리에게 이런저런 말씀도 해 주시고, 농협에서 싸게 물건 사는 법, 연탄 신청하는 법, 동네 이장님 활용법 같은 것도 잘 가르쳐 주신다. 속상한 일이 있어 뭐라도 몰두하고 싶었던 어제는, 아침나절에 아버님이 옆집 마당 한켠을 빌려서 버섯 기르시는 망대 놓고 나무 옮기는 거 도와드리고, 내친 김에 어머님이 고추장 담그시려 마당에 드럼통 불 지피고 가마 얹어 엿기름 고시는 것 주걱으로 저어드리고(게다가 이 중 얼마는 분명 내 입으로 들어갈 터이다), 저녁에는 그 불에 고기까지 구워먹고 같이 느긋하게 티비까지 보다가 우리집+그집 아이들하고 쇼파에 앉아 휴대폰게임까지 키득거리며 한 후에야 인사드리고 집에 돌아왔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도 이렇게 살갑게 살아보지를 못했는데, 이게 왠 은혜인가 싶다.
내 것이 아니다
아버님은 예전에 이장을 5~6년이나 하셨는데, 심장질환이 생기신 이후로 몸이 안 좋아지셔서(그래도 7~80kg은 거뜬히 드신단다) 금새 숨이 차신다며 관두셨다. 그리고 새파랗게 어린(이라고 해야 환갑이 넘으신) 현재의 이장님께서 일을 보시는데, 아버님은 이 새로운 이장님이 못마땅하시다. 이유는 “너무 희생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장직이라는 것이 봉사직이고 명예직인데, 동네 일을 맡아하다 보면 자기 돈 나가고 시간 뺏기는 것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장님은 무슨 일만 있으면 동네 돈을 쓰고, 자기 일을 먼저 챙기고, 동네 돈으로만 회식을 하니 사람이 덜 됐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 새 이장님, 우리가 이사왔을 때 오토바이 필요하다니까 선뜻 자기 집에서 굴러다니는 오토바이를 그냥 주시겠다며 자기 트럭에 싣고 오토바이가게까지 갔다오신 분이다. 오래 방치해 놔서 수리비가 꽤 많이 든다길래 결국 그냥 버렸지만(이장님이 어찌나 민망해 하시던지). 우리가 볼 때는 대단히 고마운 분이신데 아버님 보시기엔 털도 안난 놈에 불과한걸까. 후덜덜.
두 분께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톨스토이의 단편 중 ‘달걀만한 씨앗’이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왕이 달걀만한 호밀씨앗을 발견하고는 이게 어디서 나는 것인지를 역추적해 가는 이야기다. 이 씨앗을 본 적이 있는 자를 찾기 위해 신하들은 늙은 농부를 불러 자문을 구한다. 눈이 침침하며 귀가 멀고 곧 죽을 것 같은 이 농부는 씨앗을 한참 살피더니 자기는 모르겠다며 본인의 아버지께 물어보라고 한다. 그 아비를 불러왔는데 지팡이만 하나 짚었을 뿐, 오히려 노인아들보다 훨씬 정정하다. “자네는 이런 씨앗을 사거나 본 적이 있는가?”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렇게 굵은 씨앗은 본 적도 없지만, 산 적도 없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아직 돈이라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시니 한번 물어볼 수는 있겠습니다” 이리하여 노인의 증조할아버지까지 불려온다. 이 분은 지팡이도 없고 발걸음도 청년처럼 가벼웠다. 씨앗을 살펴보고 조금 씹어보던 노인의 증조할아버지는 “제가 젊었을 적에는 이런 곡식을 먹으며 살았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왕은 다그쳐 묻는다. “이걸 어디서 샀는가? 자신의 밭에 뿌린 일은 없는가?” 노인의 대답이다.
“제가 농사짓는 시절에는 곡식을 사고파는 그런 죄악을 궁리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또 돈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의 밭은 없었습니다. 땅은 모두 신의 것이었고, 쟁기질을 한 곳이 그냥 밭이었습니다. 땅은 임자가 없었고, 제 것이라고 부른 것은 오직 제 노동 뿐이었습니다."
교회가 공동체라고?
오늘날 교회는 예산대로 움직이는 이른바 조직적인 것에 너무 익숙하다. 또한 목사의 공금유임같은 비리를 순수한 마음의 발로라 부르는 기이한 왜곡현상도 심하다. 준비된 예산이 책정되어 있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돈으로 뭘 하는 부류가 있다면 코흘리개 아이들을 봐야 하는 주일학교 교사나 돈 없는 전도사급들이 제일 많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런 돈에 대해 교회는 “주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라며 어물쩍 넘어간다. 교회에서 체육대회나 구제용으로 나오는 빵,우유 따위나 눈치보며 몇 개 챙겨가곤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유류비에 활동비, 자녀유학비까지 교회예산으로 받아가며 대단한 섬김의 일을 감당하고 계시는 당회장 목사가 돕기로 결심한 어떤 대상은 하루아침에 막대한 헌금이 쏟아부어져도 된다. 그리고 여기저기 광고하고 나발을 불며, 감사 예배가 꼭 따라다닌다. 교회 내부에서는 칭송이 쏟아지고 역시 좋은 교회를 다닌다는 안도에 찬 찬사가 터져나온다. 나는 그런 식으로 돈을 쓰지 말고 전도사나 사찰집사 월급이나 올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활동비를 좀 챙겨주던가. 하다못해 주차봉사나 주방봉사로 목에 가래가 차고 손이 부르트도록 수고하시는 분들에게 말이라도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주일에 나와서 이렇게 교회 일을 하시면서 무슨 헌금까지 낸답니까. 우리가 주님께 혼나서 안돼요 집사님, 봉사를 쉬시든가 헌금을 내지 말든가 알아서 하세요” 뭐 이런 거. 이런 데 없겠지? 없겠지.. 아마 이게 무슨 소린지도 모를거 같다. 공동체라는 단어의 의미를 조직체라는 단어의 해석으로 배웠다면 알 수가 없을 게다.
"봉사와 명예를 위해 불러놨다"는 말은 이 시골 촌구석 이장님이 아니라, 교회가 먼저 들어야 하는 말씀이 아닌가 싶다.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은 이 동네를 사랑하고 이 동네 사람들을 자기 식구들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씀이었다. 이 동네 사람들을 자기 식구들처럼 생각한다면 쉽게 되는 일이다. 동네 이장이 동리 사람들을 가족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된 교회 공동체가 서로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은 더 수월한 일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응집된 사랑의 힘은 교회 자체를 존속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회를 사람답게 사는 사회답게 만들기 위해서(이장님이 자기 식구만 행복하려고 이장하는 게 아닌 것처럼)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가족구성원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위해서 모은 돈을 사용해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교회 외적인 단체나 지역에 대한 구제예산은 있으면서 전도사들은 기초생활수급자 신세(이거나 그에 준하는 생활)로 산다는 게 나는 잘 이해가 안간다. 정말 자기 가족으로 여기면 그렇게 할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누가 나의 형제자매모친이냐?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자만이 내 골육이다(마12장 끄트머리)” 그럼 아버지의 뜻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네 몸처럼 네 이웃(사람)을 사랑하는 것”(마22:36~40)이 아닌가.
우리는 잘 파악해야 한다. 현재의 이런 교회의 형태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는지 아닌지 말이다. 나는 “교회여, 그러니까 우리 잘 합시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여, 이런 형태로 가면 아버지 뜻대로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구조에 휘말리고 맙니다. 또 지금껏 대부분 그렇게 됐잖아요?”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공동체라는 말을 조직체라는 말로 이해하여 가르치고, 헌금이라는 말을 회비처럼, 십일조라는 말은 절대적인 연회비처럼 이해해서는 사람다움을 느낄 수가 없다. 슬픈 것은, 이런 발로가 아니라면 감히 “십일조 내지 않는 교인은 발언권이 없도록 하자”는 미친소리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성도(교회)들의 모임과 교제를 위한 규모있고 질서있는 아름다운 제도"로서의 조직교회는 기능을 이미 많이 상실했다. 그냥 교회라는 허울을 쓴 “조직체”만 남은 느낌이다. 물론 좋은 교회 좋은 목사 좋은 성도들 많이 있다. 하지만 사지가 멀쩡하다고 간에 붙은 암덩어리를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교회를 향한 쓴소리와 걱정, 우려의 목소리에 “아직 우리는 건강하다”는 항변은 마치 간암환자가 “다른 부분은 건강하니 그만 얘기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심장, 폐, 다 건강하지. 눈도 잘 보이고 멀쩡한 것 같지. 근데 너 그러다 죽는다니까. 약을 먹든 수술을 하든 뭐든 좀 해야해. 괜찮다는 타령은 좀 그만하고. 매일 공원가서 운동한다고 암세포가 사라지지 않아요 이 양반아. 아 쫌.
교회는 누구의 것인가
게다가 제 것은 어찌나 그리 많은지. 이 교회는 '내가 세웠으니 내 것'이라는 인식이 파다하다. 이 인식은 목사 뿐만 아니라 교회 임직들에게도 뿌리깊어 보인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이 교회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라고 해석하는 모양이다. 그래, 그런 거 너나 가지세요. 많이 가지세요. 자기 것이 어디있나. 자기 생명도 자기 것이 아니라면서. 교회(혹은 단체)가 자기들 거라니 참으로 민망할 노릇이다. 내가 이해하기로 [소명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것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뭘 주셨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거기에 응답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로서 살아가겠다고 약속했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톨스토이의 우화가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은 신의 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땀흘려서 얻어낸 소산만을 우리의 것으로 부를 수 있다”는 말에 교회만큼 격렬하게 아멘으로 화답해야 할 공동체 혹은 개인은 없다고 생각한다. 목회자에게 적용하자면 그의 가장 큰 소산은 본인의 설교다. 하나님의 말씀을 밭 삼아 전력을 다해 기경하고 파내어 얻어낸 보화들을 쏟아낸 접시같아야 할 그 설교문들이야말로 목사가 주장할 수 있는 가장 정당한 자기 소유다. 또는 설교문이 아니라 영혼의 아픔을 돌보는 것에 마음이 부어져서 그 일에 더욱 매진했다면, 그들의 영혼이 쉼과 회복을 얻은 것 자체가 그가 누릴 소산물이다. 교회가 목사의 소유가 아니다. 다른 이들의 아픔을 돌아보는 일을 했기 때문에 내가 교회의 주인이거나 권한이 있는 사람이라는 의식을 가지면(물론 평신도도 이런 생각을 하면) 곤란하다. 교회는 목사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형성된 하나의 영적인 마을이다. 그러니 거기서 누가 뭘 이루었든, 받아냈든 그것 외에 교회 자체의 통치권이나 회사의 대주주같은 권한을 바라는 것은 톨스토이의 말을 빌리자면 “사악하고 추잡한 죄악”이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자. “이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말 속에 우리 각자는 어떤 해석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그 교회에서, 시골 된장국같은 사람냄새가 좀 나는지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답게 살도록 하시기 위해 아들을 내어주셨는데.. 우리는 얼마나 아버지의 바램에 맞는 사람들로, 아들들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삶과 신앙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삶은 혹시 아닌지 잘 살펴보자. 나는 진정 사람인지 아닌지.
교회여, 너의 눈과 귀는 어떠한가? 너의 발은 아직도 지팡이를 필요로 하는가. 나는 2,000살이 넘은 우리의 교회가, 톨스토이 작품속의 청년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니고, 낭랑하게 말하며, 굵은 곡식을 씹어 삼킬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최정민 / 만화가(를 할 예정).
게임회사, 비행청소년시설, 디자인회사, 선교단체, 대안학교등을 떠돌면서 결국 현재는 백수.
지금은 조직도 없고 목사도 없고 건물도 없는 “우리가교회” 모임에 멤버로 출석하여 밥을 축내며 행복해 하고 있음.
가끔 순번따라 메시지도 하는데 별 감동은 없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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