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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묻고 답하다

실은, 우리는 혼자라서 두려운 것이다



며칠 전, 경기도에 위치한 작은 산에 다녀왔다. 산을 좋아하지만, 혼자 가는 것보다 친구들을 불러모아 삼삼오오 함께 가는 것을 즐겨했었는데, 이번엔 혼자이고 싶었다. 헐벗은 겨울산에 간단한 가방 하나 움켜쥐고 동행 없이 혼자 오르려니 야트막한 둘레길이 험준한 등산로처럼 다가왔다. 게다가 평일 오전에 갔으므로 사람 한명 보이지 않는 진입로는 적막하고 스산한 기운이 풍겼다. 두려웠다. ‘이 큰 산에 나 혼자이면 어떻게 하지?’, ‘혼자 산에 오르다가 사고가 나면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온갖 상상들로 채워진 머리가 마음까지 내려와 두려움의 무게에 짓눌렸다. 그야말로 “음침한 골짜기”로 들어가는 무거운 발걸음을 어찌할지 몰랐다. 


다행히 때마침 지나가던 행인 한 사람이 있어 조용히 그 뒤를 따라 한 걸음씩 밟다보니, 어느샌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자에 앉아 노래(심지어 찬송가)를 부르는 이들도 있었고, 여고동창생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며 간식을 나누고 계셨다. 그렇게 두려움은 사라졌다. 비록 일면부지의 사람들이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과 위급한 상황에서 최소한 함께 해줄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안심이 되었다. 물론 믿기 어려운 사건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요즘은 그야말로 사람이 제일 무서운 존재가 되긴 했지만. 어쨌든 두려움이라는 것이 무진의 안개처럼 사라지자, 두려웠던 이유를 생각하며 나홀로 산행을 계속하게 되었다. 곰곰이 들여다보니, 두려움의 시작은 혼자라는 생각이었다. 





삶의 수많은 질곡 중에서 혼자라는 두려움이 몰려올 때가 있다. 요즘 대학생들이 준비의 준비를 거듭하는 이유도 어쩌면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개인의 자유를 양보하고서라도 ‘남들 사는 것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이 되어버린 우리시대의 젊은 얼굴에는 두려움이 묻어있다. 김기석 목사의 책 <아슬아슬한 희망>에서 소개한 시(時), 김승희의 「제도」의 한 구절을 빌려오면 이렇다.  


아이는 하루종일 색칠공부 책을 칠한다

나비도 있고 꽃도 있고 구름도 있고

강물도 있다

아이는 금 밖으로 자신의 색깔이 나갈까봐 두려워한다.


그렇게 우리는 ‘평범한 삶’에서 일획이라도 벗어날까 두려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삶의 모양을 내 삶에 들여와 채우려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남들이 하는 것처럼 학점, 토익, 어학연수, 공모전 그리고 그 다음엔 인턴쉽 등 준비 단계들을 밟아가며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삶’의 더미로 스스로를 이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오늘과 지금이 없고, 과거의 슬픔과 미래의 불안만 남게 되는 것 같다. 


혼자라는 두려움을 극복할 방법은 모르겠다. 방법도 모르면서 ‘파이팅’, ‘힘내라’라는 말도 못하겠다. 나 역시 우리 사회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일의 무게를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다. 나도 두렵다. 그러나 가끔 두려운 마음으로 산을 올랐을 때처럼 곧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말씀대로 이미와 아직의 하나님 나라를 아슬아슬하게 일구며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을 통해 다음 걸음을 내딛을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된다. 앞서 인용한 책에서 김기석 목사는 “모든 생명은 비스듬히 기댄 채 살아간다. 너 없이는 나도 없다는 사실을 절감할 때 인생은 고마움이 되고, 저 깊은 마음의 심연에 별 하나 떠오른다”(78p)고 말한다. 


혼자라는 두려움이 엄습할 때, 고개를 들고 귀를 기울이면

나보다 앞서 걷는 이들이 별처럼 떠올라 우리 인생에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





산책(필명) 산, 꽃 그리고 책을 좋아한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터프하진 않지만 강하고, 
여리지는 않지만 나름의 감성을 소유한 이중성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