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소녀 네티>...
어릴 적 <천사소녀 네티>라는 만화를 즐겨봤다. 문제는 즐기는 것을 넘어서 주인공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꿈에도 그녀가 나왔고,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나는 그야말로 ‘오덕’이었다.
‘오덕(후)’은 일본어 ‘오타쿠’를 우리말로 바꾼 것으로, 만화나 게임 등 어떤 한 분야에 비정상적으로 심취한 사람을 일컫는다. 어떤 만화에 빠졌다면 단순히 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그 만화의 캐릭터가 그려진 베개, 이불, 칫솔, 인형 등을 구입하고 24시간 그와 동행하는 사람이다.
사진은 참고할 뿐 필자의 이미지와는 관련 없음을 굳이 밝힙니다..
나도 약간의 오덕적인 기질을 가졌다. 영화를 볼 때 좋은 영화가 있으면 같은 감독의 영화를 다 챙겨본다. 옷도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그 집 옷만 입는다. 음식도, 커피도 마찬가지다. 한 번 빠지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타쿠적 성향은 잘 활용하면 좋은 무기가 된다. 나는 그것을 독서생활에 이용하고 있다. 한 작가를 정하고 그의 책만 몇 번 이고 읽거나,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오덕적 책읽기' 라 부른다.
내가 오덕적 책읽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한 저자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글이라는 것은 글쓴이의 고유한 세계관이, 삶의 결이 녹아있는 것이기에, 한 권을 한 번만 읽어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작가들마다 언어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같은 언어라도 다른 용도로,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이를테면 욕망이라는 단어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실존을 잘 설명해 주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죄악과 결부되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한 저자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한 저자의 책을 4~8권정도 읽는다. 그리고 해설서와 전기 등 참고서를 2~4권 읽는다. 처음 읽었던 책이 좋아서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 읽고, 유명한 작가라서 읽기도 하고, 때로는 한 책이 너무 좋아 반복해서 읽는 경우도 있다.
내가 심취했던 작가 중 한 명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또예프스끼다. 우연히 집어 들었던 <죄와 벌>을 읽고 완전히 매료돼 버렸다. 그 이후로 8권정도 읽었고, 두 번 반복해서 읽은 책이 3권, 해설서만 4~5권 읽었다. 그렇게 읽고 나니 모든 것이 도스또예프스끼의 눈으로 보였다. <가난한 사람들>을 읽으며 사회적 약자들의 비극적 실존을 생생하게 느꼈고, <죄와 벌>을 읽으며 타자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희생하는 것만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방법임을 알게 되었고,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보며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부분으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저자와 하나되는 독서를 꿈꾼다
이 외에도 내 존재를 사로잡았던 작가는 니체, 프로이트, 카뮈, 사르트르, 자크엘륄 등이 있고 최근에는 엠마누엘 레비나스에게 빠져있다. 이들의 책을 읽으며 함께 고민하고, 가르침을 받고,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만화에 빠진 오타쿠처럼 나는 하루 종일 그들과 동행했다.
오덕적 책읽기는 푹 잠기는 독서이다. 책 뒤에 있는 저자와 소통하는 독서이며, 그와 하나가 되는 독서법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저자와 그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타쿠처럼 그 책과, 작가와 24시간 동행하는 열정이 필요하다. 이제 (오)덕력을 발휘해 보자.
장대근 / 부산 동서대학교 청소년 상담심리학과 휴학생이자 로고스서원 18기.
전공을 버리고 인문학자의 길을 택한 과감한 남자.
현재 휴학을 하고 주유소 알바생으로 지내고 있다.
'청춘이 묻고 답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안의 윤똑똑이 (0) | 2015.04.03 |
---|---|
사람답게 산다는 것 (0) | 2015.03.17 |
실은, 우리는 혼자라서 두려운 것이다 (0) | 2014.12.15 |
예수를 믿는다는 것 (9) | 2014.12.12 |
주유소에서 하나님나라를 숙고하다 (5) | 2014.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