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춘은 무모하다. 청춘들이 갑자기 찾아와 ‘나 사랑에 빠졌어.’라는 말만 들어도 내 가슴은 철렁하고 내려앉는다. 그들의 무모함은, 세상의 거친 풍파를 아직 겪지 못한 순수함으로써, 그들의 삶의 향방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그들의 사랑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가끔 그들을 위험으로부터 구원해내기 위해 세상의 거친 면면을 설명하고 있자면, 그들은 단호하게 나의 세계관을 거절한다. 그리고는 ‘나는 청춘이야, 그러니 지금은 무모한거야, 그러니까 건드리지 마.’라고 온 몸으로 신호를 보낸다. 그렇다, 청춘은 말릴 수가 없다.
2.
간혹 그런 청춘들의 주변에는 ‘애늙은이’들이 존재한다. 무모한 사랑을, 무모한 삶을, 무모한 꿈을 그려내며 실현하는 그들 주변에는 항상 ‘야, 세상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라며 세상의 거친 풍파를 증언하는 ‘애늙은이’들이 있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세상의 풍파를 겪어낸 것인지, 혹은 어떤 어르신들로부터 조언을 얻은 것인지는 몰라도, 세상의 거친 면모에 대해서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 청춘이라면 아파할, 흔들려야할, 눈물 흘려야만 할 지점에서 초연하다. ‘원래 세상이 그런 것인데요, 뭘.’이라며.
3.
그런데 이상한 지점이 있다. 분명 사랑에 있어선, 미래에 있어서 ‘청춘’인 이들이 ‘신앙’의 영역에만 들어오면 대부분이 ‘애늙은이’로 둔갑한다는 점이다. 분명 말도 안 되는 사랑을 위해 울고불고, 자신의 삶을 모두어 바치던 ‘청춘’들임에도, ‘신앙’이라는 영역에만 들어오면 그들은 ‘애늙은이’로 변한다. 그리고는 편안한 표정에 머리를 쓸어 넘기며, ‘원래 하나님이 그런 분이잖아요.’라고, ‘원래 세상이 그런 곳이잖아요.’라고, 그리고 ‘원래 신자의 삶이 그런 것이잖아요.’라고 말한다. 가끔 흘리는 눈물마저도 괜스레 노련미가 돋보일 정도로. 왜, 왜, 이들은 ‘신앙’이라는 영역에서 그렇게 변하는 것일까? 신앙이라는 그곳은 왜 마치 버뮤다 삼각지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일까?
4.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성령’을 갈구해왔으면서도, 그리고 강단과 목회 현장에서 수없이 ‘성령’을 말해왔음에도, 또한 한국교회의 역사에서도 ‘성령’을 가장 중요시 여겨왔음에도, 실질적 신자들의 삶 속에서는 역동적인 생명의 영의 역사가 아닌 ‘훈련’을, ‘절제’를, ‘성숙’을 요구해왔다. 분명 청춘의 시기를 지나가며 영적인 삶에서의 모든 풍파를 마주해야할 시기에, 말도 안 되는 지점을 향해 도약할 용기를 지녀야할 시기에, 한국교회는 그들에게 ‘훈련’이라며, ‘절제’라며, ‘성숙’이라며 그들을 자제시켜온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래야 해.’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한국교회에는 청춘은 사라지고, 애 아니면 애늙은이가 가득한 이상한 공동체로 자라왔다.
5.
따라서 필자는 한국교회의 청춘으로써, 그리고 수많은 애늙은이들이 ‘애늙은이’라는 비닐하우스를 벗어나, 거친 야생의 청춘으로써 해방되길 원하는 한 명으로써 본 <광장, 청춘>에 글을 기고하고자 한다. 청춘이 방황하지 않으면, 청춘이 자신의 욕망을 건강하게 표출하지 않으면, 그렇게 ‘애늙은이’로 자라나가는 것은, 사실상 건강하지 못한 비정상적 삶을 영유해나갈 가능성이 크다. 기실 현 한국교회의 문제도 이러한 ‘청춘의 부재’, ‘청춘의 존재를 거부하는 한국교회의 태도’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닐까?
6.
이제 ‘성숙’이라는, ‘절제’라는, ‘훈련’이라는 겉치레를 우리네 삶 속에서 잠시 치워버리자. 그리고는 우리네 영적인 삶 전체를 똑바로 직시해보자. 우리네 영적인 삶이 방황해야할 영적 나이인지, 아니면 세상의 모든 영적 풍파를 견뎌내고 ‘괜찮아, 원래 그런 것이잖아.’라고 할 영적 나이인지. 그리고 청춘이라면 힘껏 무모하자, 그리고 힘껏 방황하자. 두려운가? 우리네 청춘들의 삶이 무모할 지라도, 방황할지라도 이를 초월하는 사랑이 있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롬 8:38-39, 새번역)
홍동우 / 부산장신대학교 신학과 학부생.
학생과 전도사의 경계, 부산과 대구의 경계, 보수적 기독교와 진보적 기독교의 경계,
인문학과 신학의 경계 사이에서 양자와 서로 대화하며, 갈팡질팡 방황하는 한 평범한 청년 전도사이자 경계인.
<광장, 청춘> 기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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