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춘이 묻고 답하다

굿바이 마이 프렌드, 신해철 : 그의 죽음과 삶.. 그의 노래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겠지. 

굿바이 얄리 언젠가 다음 세상에서도 내 친구로 태어나줘" 


그가 일곱살 때 처음 죽음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된 사건을 노래로 담아낸 "날아라 병아리"의 한 구절이다. 이 노래의 얄리처럼 그는 며칠간 심하게 앓다가 우리 곁을 훌쩍 떠나버렸다. 슬프다. 아주 많이...  생각해보니 그는 20살 데뷔할 때부터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죽음에 대한 깊은 묵상이 담긴 노래를 지속적으로 불렀다. 무한궤도 1집 타이틀 곡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세월이 지나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아마 신해철은 그 대답에 "아무 후회없이 살았노라"라고 당당히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노래 속에 깊은 성찰을 담아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뮤지션이었다. 그의 장례식에 울려 퍼질 "민물 장어의 꿈" 뿐 아니라 "Ocean: 불멸에 관하여", "길 위에서" "일상으로의 초대" 등의 가사를 보라. 그는 존재의 유한성의 자각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실존적 가치와 같은 철학적 수사를 대중음악 안에 실현시키고 공감을 끌어내지 않았던가. 그가 남긴 노래 중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를 소개해본다. 완벽하게 바다를 형상화해 낸 것 같은 장엄한 음악과 철학적 가사는 대중음악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문학적-사상적 경지를 보여준다.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 


바다, 검푸른 물결 저 위로 새는 날개를 펴고

바다, 차가운 파도 거품은 나를 깨우려 하네.

슬픔도 기쁨도 좌절도 거친 욕망들도

저 바다가 마르기 전에 사라져 갈 텐데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운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처음 아무런 선택도 없이 그저 왔을 뿐이니

이제 그 언제가 끝인지도

나의 것은 아니리 세월은 이렇게 조금씩 빨리 흐르지만

나의 시간들을 뒤돌아보면 후회는 없으니

(그대 불멸을 꿈꾸는 자여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으라 말하는가)

(왜 왜 너의 공허는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처음부터 그것은 텅 빈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음악적으로도 그는 상업적 안주를 넘어 끝없는 실험을 시도했던 창의적 아티스트였다. 서태지 신드롬에 살짝 가려 있었지만, 그는 아이돌, 댄스, 발라드, 하드록, 프로그레시브 록, 일렉트로닉, 재즈에 이르기 까지 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음악적 트렌드의 거의 모든 실험에 자기의 자취를 남겼다. 그가 아주 창의적인 장르의 생산자는 아닐지라도 (그래서 그의 음악적 가치는 생각보다는 과소 평가되어왔다) 그의 실험정신은 분명 그의 시대에 가장 (적어도 서태지보다는) 창의적인 음악인이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 "미디"와 "사운드" 개념을 최초로 정착시켰던 인물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나 삶에서도 언론의 눈치나 대중들의 시선을 넘어 늘 뚜렷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감하고 진정한 셀러브리티였다. 그래서 그의 발언은 미디어에 의해 “독설”로 기사화되곤 했지만 그의 발언들을 돌아보면 늘 “상식”에 충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40대가 넘어서더니 모든 가부장적 가치에 저항이라도 하겠다는 듯 그동안 쌓아올린 카리스마 다 버리고 귀엽고 따뜻한 남편과 아빠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사람보다 더 인생을 다이나믹하게 잘 산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인터뷰어 지승호와 함께 작업한 <신해철의 쾌변독설>이란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은 그의 삶, 음악, 사상에 대한 가장 좋은 비블리오그라피이다. 그의 사상적 진보성 뿐 아니라 (의외로) 아주 뚜렷한 도덕적 가치관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줄 치면서 읽다보면 거의 모든 페이지가 얼룩질 정도로 주옥같은 그의 발언들에 감탄할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종교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신앙(?)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의 노래 중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 “The Age of No God", "Money" 같은 노래들을 들여다보면, 무신론적 가치 속에 인간의 죄성과 교만은 결국 유토피아를 가장한 묵시적 현상과 현실이라는 것을 고발하고 있다. 


젊은 시절 신부가 될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던 그의 자아는 천상의 영성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 세속에서 순례하는 딴따라의 길을 선택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물질주의에 함몰된 이 땅의 교회 안에 영혼의 둥지를 트기엔 교회는 너무나 천박한 장터였겠지. 그는 하덕규와는 달리 그 공허한 교회 안 “무성한 가시나무 숲”의 황량함에 찔려 날아가 버린 것 같다. 그의 노래 중 ”예수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Jesus)의 가사를 소개해 본다.


<예수 일병 구하기> 


주 예수를 팔아 십자가에 매달아 삐까번쩍 예술적 건물을 올릴 적 

주 예수를 팔아 그를 두 번 매달아 사세확장 번창 아주 난장이 한창

미움을 파는 게 사랑보다 쉬우니 나랑은 협박 때리고 너랑은 윽박지른다. 

이놈은 이단이요, 저놈은 배반이요, 딴 놈은 개판이요, 그래 이 몸이 사탄이요

활활 타올라라 불지옥의 이미지 살살 구슬려라 너무 겁먹어도 데미지 

이루어지리라(남편 승진) 이루어지리라(자녀 합격) 

원수를 보는 눈앞에 여 보란 듯 살게 되리라

활활 타올라라 불지옥의 이미지 살살 구슬려라 너무 겁먹어도 데미지 

지옥가리라(현금 부족) 지옥가리라(교칙 위반) 

영원한 어둠 속에서 헤메이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샵니다.


그 누가 구원을 그리 확신하며 또 그리 자신하는가 

이 세상의 끝 최후의 심판의 그 날이 오기 전에 

그 누가 구원을 그리 확신하며 함부로 약속하는가 

그가 하라 한 건 단 하나 오직 하나 

All We Need is Love...


주 예수를 팔아 십자가에 매달아 천국행 직행표 공동 구매 대행 

주 예수를 팔아 그를 두 번 매달아 자 영생을 팔아 한 평생은 모자라

주 예수는 눈이 어두우시네 온 동네 꼭대기에 십자가를 올려야 보시네 

주 예수는 무지 까다로우시네 소원은 꼭 기도원에서 해야 들어 주시네

주 예수는 귀가 어두우시네 소리 질러야 들으시네 

지랄발광 해야 보시네 (할렐루야 할렐루야 렐루랴 렐루야)

눈물이 콧물이 또 봇물처럼 터지네 무당 푸닥거리 한 딱가리 애들은 저리 가라


자학의 카타르시스 집단적 madness  

너네가 크리스찬이면 내가 guns and roses 

자뻑의 hot business 이제 그만 됐스. 

너네가 종교라면 내가 진짜 비틀스

All We Need is Love...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번쩍이는 저 바벨의 탑이여 

대량으로 생산되는 개나 소나 아무나 목자여 황금의 소를 따라가는 눈 먼 양이여

하늘의 옥좌를 버리고 인간이 된 private Jesus 

그가 바란 건 성전도 황금도 율법도 아니라네. 

All we need is love...


그의 죽음의 소식을 접하며 그가 남긴 많은 앨범 가운데 특별히 1991년에 발표한 2집 앨범 <Myself> 음반을 들어보길 권한다. 혼자서 작사, 작곡, 노래, 편곡, 연주, 녹음, 디자인의 모든 작업을 다한 것도 놀랍지만, 이 앨범에 담긴 9곡의 노래 가사들엔 22살 청년이 바라본 세상과 그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겠다는 다짐이 잘 담겨있다. 지금 돌아보니 그는 자신이 20살 언저리에 썼던 가사들처럼 음악을 했고 그렇게 살아 왔음을 분명하게 느끼게 된다. 그가 올 해 발표한 마지막 앨범이 22살의 자신에 대한 화답처럼 "Reboot Myself"였음이 세삼 놀랍다. <Myself> 음반의 마지막 트랙 “길 위에서”의 가사를 소개한다. 그 때도 그랬지만 한 구절 한 구절 지금도 내 맘을 적시는 신해철의 숨겨진 명곡이다. 우리 시대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길 위에서> 


차가와지는 겨울바람 사이로 난 거리에 서있었네

크고 작은 길들이 만나는 곳 나의 길도 있으리라 여겼지

생각에 잠겨 한참을 걸어가다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었지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하는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첫 깨어남이었지 


끝없이 뻗은 길의 저편을 보면 나를 감싸는 건 두려움

혼자 걷기에는 너무나 멀어 언제나 누군가를 찾고 있지

세상의 모든 것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고 

삶의 끝 순간까지 숨 가쁘게 사는 그런 삶은 싫어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길

언제나 내 곁에,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주오


내 딸이 5학년 되던 때, 신해철 20주년 콘서트에 함께 갔다. 그 때 난 내 아이에게 이 사람 같은 음악인도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내면엔 내 딸에게 그를 통해 나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는 나하고 같은 나이이고, 내 절친 석기용 교수의 서강대 철학과 87학번 동기이다. 대학 1학년 때 딱 한번 커피숍에서 함께 만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내 인생의 친구처럼 느낀다. 그는 늘 자신의 음악으로 내게 말을 걸었고, 난 그 음악을 통해 내 생각을 더 발전시켜 갈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좋아하지만 결코 실현시킬 수 없었던 음악을 대신 불러 주었고, 사회와 종교적 기득권자들을 향한 분노에도 두려움에 침묵하던 내 대신 시원하게 펀치를 날려주었고, 나의 외향에 숨겨 놓은 나의 위선의 껍데기도 대신 훌쩍 벗어제끼고 자유롭게 질주했던 내 인생의 분신으로 살아 주었다. 


최근에 발표한 그의 원맨 아카펠라, "A.D.D.a"만 보더라도 나이를 먹어도 여전한 그의 장난기에 놀랐다. 또한 나이를 먹었어도 1000번 이상을 덧입혀 녹음하는 집요함과 성실함에 더 많이 놀랐다. 그것이 그가 보여준 인생의 두 철학인 듯하다. 그는 그렇게 "재미있게" 그리고 "열심히" 46년 주어진 자신의 삶을 “충분히” 살았고, 이제 “아쉽게” 돌아갔다. 그는 사라졌지만 아주 오랫동안 계속 우리에게 말을 걸며 대화할 진짜 레전드가 되었다. 이제 그렇게 신해철을 보내려고 한다. 굿바이 마이 프렌드!





윤영훈 / 드루대학교 철학박사(기독교문화전공) 

현 빅퍼즐 문화연구소장 

현 명지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