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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묻고 답하다

변방으로부터의 위로

   


                                       Ⓒ 돌베개.


[서평] 신영복 <변방을 찾아서>(돌베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상이 나와 상관없이 활동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다. 어렸을 때는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 무엇이든 원하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과학 독후감에 자신 있게 써내려갔던 해저세계에서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로봇의 시중을 받으며 호강하는 미래세대의 주역인줄 알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 문득 꿈을 꾼다는 것과 이룬다는 것은 꽤 복잡한 과정과 계산이 필요한 것을 자각하게 되고, 이어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세대의 주역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평범하면 다행이지만, 지금 여기 나는 변방에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 자본주의 시대에서 돈 없는 자로 사는 것, 학벌주의 사회에서 살피재 골짜기 출신인 것, 성과주의 시대에서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사는 나는 과연 변방 중에 변방이다. 내 급여의 두 배 이상을 받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전문가로 활동하며 가시적 성과들을 차곡차곡 쌓고 있는 지인들을 만날 때면 가끔 ‘루저’가 된 기분을 지울 수 없을 때가 있다. 머리로는 내가 선택한 일이고, 보람도 있고, 여전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다독이지만, 마음은 알 수 없는 패배감과 비교의식으로 인해 침전될 때가 있다.(아직 어른이 되고 있는 과정인가?) 


이런 의미에서 『변방을 찾아서』는 침전된 나를 깨우고 까부르는 글이었다. 저자 신영복 선생님은 머리말에서 “변방을 낙후되고 소멸해가는 주변부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전위로 읽어냄으로써 변방의 의의를 역전시키는 일이 (이 글의)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변방의 삶을 ‘찾아서’ 들여다보고, 그 삶을 새로운 가능성의 전위로 읽어내는 흐름을 설렘으로 따라갔다. 100쪽이 조금 넘는 얇은 책에서 뿜어내는 이야기들은 변방을 울리고 주변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를 쫓아 곳곳에 찾아간 기록으로서, 이 글은 ‘어리석고 우직하게, 불의한 사회와 타협하지 않고 낡은 것에 대한 각성과 그것에 대한 과감한 결별을 하는 것이 변방성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변방을 찾아가는 길’이란 멀고 낙후한 지역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각성과 결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있는 곳이 진정한 의미의 변방임을 되짚는다. 




생각해보면 예수님도 변방출신 아니었던가. 예루살렘 출신도 아니고, 바울처럼 가말리엘의 제자도 아니었다. 베들레헴 출신의 목수 아들. 갈릴리를 주무대로 활동하셨던 변방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변방의 예수는 온 인류의 메시아가 되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사람들을 새로 태어나게 하는(born again) 창조의 중심이 되었다. 예수님뿐만 아니다. 결국 변방을 구습과 충돌하게 하고 새로운 가치를 일궈내는 곳으로 만드는 것은 변방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이다. 사회적 대세와 삶의 궤도에서 과감하게 탈출을 성공하고, 목소리를 잃어버린 자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삶을 사는 용기있는 자들이 내가 사는 이곳의 사람들이다. 


같은 변방출신의 앞선이가 말했다. 세상의 단순한 이치는 돈 없는 사람이 부자의 도움을 받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돈 없는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을 만나 더 이상 돈 없음이 문제가 되지 않고 극복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신비라고. 변방의 창조성은 중심과 주류의 화려함이 아닌 변방의 우직한 어리석음으로 함께하는 우정과 연대의 가치로 창조해내는 지금 여기의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또 변방을 살고 있는 분들에게 우정과 연대의 마음을 드린다. 





산책(필명) 산, 꽃 그리고 책을 좋아한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터프하진 않지만 강하고, 
여리지는 않지만 나름의 감성을 소유한 이중성격자.